통증 연대기/멜러니 선스트럼 지음·노승영 옮김/에이도스 발행·442쪽·2만원
죽음과 마찬가지로, 통증은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지 않다. 죽음의 예고편으로서 통증은 때로 죽음보다 더 큰 공포로 다가오기도 한다.
미국의 저술가인 멜러니 선스트럼은 인간의 원초적인 감각인 통증을 철학과 종교, 문학, 역사, 의학, 신경과학을 넘나들며 해부한다. 통증을 바라보는 시대별 관점과 통증 관련 연구 성과, 환자들의 통증 경험 등을 담고 목과 어깨, 팔까지 이어지는 저자 자신의 만성 통증에 관한 기록을 같이 엮었다.
뇌의 활동을 통해 정서와 인지, 감각이 모두 연결되는 인간은 통증을 받아들일 때 언제나 슬픔을 비롯한 부정적 정서와 연관 짓는다. 하지만 인류가 통증을 하나의 메커니즘으로 설명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근대 이전의 인류는 통증을 은유적으로 설명했다. 바빌로니아인의 경우 치통을 귀신이 이를 갉아먹은 것으로 이해했다. 통증(pain)의 어원이 '처벌'을 뜻하는 라틴어 포이나(poena), '갚다'의 의미를 지닌 그리스어 포이네(poine)인 데서도 알 수 있듯 영적인 문제로 이해하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통증을 귀신이 일으키는 발작이 아닌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생물학적 현상으로 받아들인 것은 마취법이 발견된 19세기부터다. 통증을 신경섬유가 통증 신호를 뇌에 전달하는 단순하고 기계적인 감각으로 보는 생물학적 통증관이 등장했다.
그러나 생물학적 통증관으로는 만성 통증이나,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통증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힌두교 축제 타이푸삼에서는 순례자들이 낚시 바늘을 등에 꽂고도 환희의 춤을 춘다. 그래서 현대의 통증 모델에서는 뇌의 여러 부분이 복잡하게 상호작용해 통증이 생긴다고 본다.
이처럼 통증을 바라보는 시각은 시대에 따라 변해 왔지만 저자는 근대 이전의 통증관인 은유가 현대에도 유효하다고 말한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순교자가 믿음으로 통증을 이겨냈듯 통증을 참을 수 있고 참아야 하는 것으로 여긴다. 저자 역시 마음의 속성인 고통과 통증에 맞서 싸우기보다 이를 함께 안고 갈 대상으로 인식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말한다. 결국 보편적인 인간 경험인 통증이 우리 안에 있는 것임을 알리는 셈이다.
중요하지만 크게 주목 받지 못했던 통증의 모든 것을 충실한 조사를 바탕으로 학문적으로 접근하면서도 감성적인 문체로 풀어내 읽는 재미가 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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