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과세상/ '글로벌 슬럼프' 작금의 경제위기…그 이면엔 '정치'라는 변수가 있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과세상/ '글로벌 슬럼프' 작금의 경제위기…그 이면엔 '정치'라는 변수가 있다

입력
2011.11.18 13:36
0 0

글로벌 슬럼프/데이비드 맥낼리 지음·강수돌 김낙중 옮김/그린비 발행·392쪽·1만7,000원

2008년 이후 경제위기에 대한 전문가들의 진단은 크게 둘로 나뉜다. 주류경제학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탓한다. 돈도 없는 사람들이 주택융자 신청을 많이 해서 '미국발(發) 금융위기'의 시발점인 서브프라임 사태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반면 비주류 학자들은 정부의 금융권 탈규제와 지원을 문제 삼았다.

캐나다 요크대학 정치학과 교수 데이비드 맥낼리는 이 이분법적 진단에서 벗어나 경제 변수에 정치를 포함시킨다. 마르크스주의와 여성주의, 반인종주의를 연구하는 그는 정치적 지형에서 좌파에 속하며 그가 연구하는 경제란 상품 가치에 노동을 포함시키는 정치경제학이다. 책을 번역한 강수돌 고려대 교수는 "조지프 스티글리츠, 장하준 등 자유주의적 케인스주의자와는 다른 각도와 방법론을 가지고, 현재 자본주의 위기의 원인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린다"고 평했다.

저자는 작금의 경제위기가 일시적 경기 침체를 뜻하는 더블딥과 구별되며 오랜 기간 다차원적 위기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한 '슬럼프'라고 규정한다. 이 현상이 다국적 차원에서 진행되니 책 제목대로 세계는 지금, 글로벌 슬럼프에 처해있다. 저자는 이 위기의 원인이 자본의 과잉 투자, 이에 따른 이윤율 저하에 있다고 본다. 얼핏 마르크스의 공황이론에 빗댄 분석 같지만, 저자는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에서도 한걸음 물러나 있다.

책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위기와 팽창, 금융화 과정의 역사를 정치 변수와 함께 정리하며, 전후 글로벌 자본주의를 네 시기로 나눈다. 지속적 팽창기(1948~1973), 세계적 경기침체기(1973~1982), 다시 지속적 팽창기(1982~2007), 그리고 글로벌 슬럼프(2007~?) 시기다. 특이한 것은 그가 1982~2007년을 '장기 침체기'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팽창기로 본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정치적 토대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 특히 미국과 영국에서 레이건과 대처의 노조 파괴, 자본의 구조조정과 해외 직접투자로부터 형성됐다고 주장한다.

금융위기의 결과는 곧바로 서민 경제의 파탄으로 이어진다.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반자본주의 운동은 이런 위기의 신호탄이다. 책의 후반부, 볼리비아 국민들의 물 민영화 반대 투쟁, 시카고 전기노동자연합 소속 노동자들의 공장 점거 사례 등 선진 자본주의에 대한 하위주체들의 저항을 소개하며 그가 제시하는 대안은 다음과 같다. 급진적 직접 민주주의 실천, 과거 노동운동과 청년 운동의 교류, 진보그룹의 분파주의 극복, 반자본주의 운동에 노동운동과 여성운동, 인종차별 반대 운동 혼합, 풀뿌리 민중 권력의 제도화, 저항세력의 인프라 형성….

원서는 2010년 1월 캐나다에서 출간됐는데, 국내 번역본에는 번역자가 올 7월과 10월 두 차례 저자를 인터뷰한 내용을 덧붙였다. 저자는 최근의 월가 시위에 대해 "볼리비아, 멕시코의 대중 항쟁이 선진 자본주의 국가로 확산되고 있음을 의미"한다며 "실업, 주택 압류, 사회복지 삭감 등으로 고통받는 노동계급과 더 직접적인 방식으로 결합하라"고 조언했다. 한국의 촛불시위, 희망버스 등 일련의 사회운동에 대해서는 "자본가들이 가장 경쟁력 높은 최고의 작업방식을 찾느라 혈안이 된 것처럼 사회운동 진영도 가장 훌륭한 실천 방식을 찾도록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저자의 대안은 윤리적 당위성이 충분하지만,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이상적이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글로벌 슬럼프에서 탈출할 수 있는 힘은 99%의 저항이 아니라, 1%를 제어할 제도적 장치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하지만 작금의 경제위기가 은폐하는 정치적 의미를 읽어낸 체계적인 분석만큼은 탁월하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