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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사람/ 샌드페블즈 40돌 콘서트 끝낸 윤장배 전 농수산물유통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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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사람/ 샌드페블즈 40돌 콘서트 끝낸 윤장배 전 농수산물유통公 사장

입력
2011.11.18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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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는 마구 틀려 댔지만 필은 젊은 시절 딱 그대로였어요. 뭐 맞은 사람처럼 미친 듯 흔들었죠."

12일 오후 서울대 문화관 대강당. 윤장배(60) 전 농수산물유통공사 사장은 자신의 창조물인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구 농대) 록밴드 동아리 샌드페블즈(모래와 자갈)의 창단 40돌 기념 콘서트에서 스무 살 심신 상실의 상태로 기꺼이 회귀했다.

이날 콘서트는 20주년, 30주년에 이어 10년 만에 1기부터 39기까지 멤버들이 다시 뭉친 잔치. 앞서 두 차례의 기념 콘서트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기별(올해는 8개 기 참가)로 젊은 날 그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고 갔던 주옥 같은 명곡을 선사했다. 윤 전 사장 등 1기 6명 역시 CCR의 '헤이, 투나잇', 마마스 앤드 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리밍', 애니멀스의 '더 하우스 오브 더 라이징 선'을 연주, 관객들을 열광으로 함몰시켰다. 예전대로 윤 전 사장은 베이스, 주대명 가톨릭대 교수는 보컬, 정학상 팜스코 대표는 색소폰과 건반, 장세권 경우시스테크 대표이사와 김동만(사업)씨는 기타, 이남묵 중국 상하이(上海) 삼보자동차에어컨 회장은 드럼을 맡았다.

이 콘서트는 4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였지만 1기 멤버가 모두 회갑이어서 이 잔치도 겸했다. 윤 전 사장만 해도 22일이 회갑 날. "회갑 잔치 맞은 노인답게 점잖게 앉아서 애들 공연이나 볼까도 했지만 아무래도 끼를 주체할 수 없는 위인들이어서 그냥 무대에 올랐어요."

첫 행사였던 20주년 콘서트를 제의했던 것은 졸업생 모임 회장인 장세권 대표. 그가 "젊은 그때로 돌아가자"는 철없는 제안을 하자 맨 위부터 끝 기수까지 모두들 정말 철없게도 이에 흔쾌히 동의했다. 이어 30주년 콘서트도 맴버들의 질끈 지지 속에 화려하게 열렸고 이번에 40주년 행사까지 무난히 개최된 것이다.

40주년 콘서트가 결정되자 모든 멤버들은 맹연습에 돌입했다. 1기도 8월 말부터 중국에 있는 이남묵 회장까지 불러들여 한 달에 두세 번씩 연습을 했다. 지난달 29일 서로 기량을 점검하는 오디션을 앞두고는 사나흘 밤을 꼴딱 새면서 젊은 날의 열정에 흠뻑 침잠하기도 했다. "사실 1기는 모두 기숙사생이라 수업만 비면 밤이고 낮이고 연습했어요. 많으면 하루 7~8시간도. 이번엔 나름대로 했지만 아무래도 연습량이 태부족이었어요. 기량을 보면 전성기의 80%정도. 그래서 실제 공연에서는 곳곳마다 틀렸어요."

참가 팀 가운데 최고는 6기였다. 이들은 여병섭(55) 파라곤커뮤니케이션즈 대표가 노래 부른 '나 어떻게'로 1977년 1회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차지했던 팀. 이날도 차원이 다른 연주로 선배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샀다. "6기는 KBS 1TV '콘서트 7080'에 나오면서 꾸준히 연습을 했어요."

'나 어떻게' 작곡자는 5기 김창훈(산울림). 이날 김창훈의 맏형 김창완도 김창완밴드를 이끌고 우정 출연했다. 1기 김동만씨는 최근 KBS 2TV의 오디션 프로그램 '톱 밴드'에서 우승한 2인 밴드 톡식의 멤버인 아들 김정우와 함께 처음으로 협연 무대를 가져 이목을 집중시켰다. 사회는 2기로 잠시 활동한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대표가 맡을 예정이었으나 한류 콘서트 협의를 위해 중남미로 출장을 가 축구해설가 박문성씨가 대신 맞았다.

연주도 멋졌지만 이날 관객이 2,000명이나 모인 것 역시 대단한 사건. "서울대 대강당이 탄생한 이래 이렇게 많이 모인 건 처음이라네요. 또 주로 40대와 50대였지만 20대와 60대가 있었다는 점도 쇼킹하고." 낮 익은 팬들의 등장도 한껏 즐거운 일. 농대 63학번 김동태 전 농림부 장관은 계속 팬을 자처하며 공연마다 참가했는데 이번에도 눈에 띄었고, 농대 교수들의 모습도 보였다.

샌드페블즈는 71년 윤 전 사장 주도로 창단됐다. 당시 한국은 록의 세례를 처음 받던 시기.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여기에 몰입했고 윤 전 사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결국 그는 농대 축산학과에 입학하자마자 중앙고 동창생들로 밴드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 첫 도전은 몇 개월 만에 허망하게 끝났다. "아버지가 찾아와 '대학 보내 놨더니 딴따라냐'며 내 머리 끄떵이를 잡아끌고 갔어요."

하지만 그는 반란의 꿈을 접을 수 없었다. 그리곤 농대생들을 상대로 공모자를 모았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샌드페블즈. 이들은 50만원 하는 악기를 구입하느라 불효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나도 두 번이나 등록금 떼먹었고, 책값 가짜로 받은 것은 부지기수고."

밴드는 순조롭게 굴러갔으나 그가 재학 중 군에 가게 되면서 밴드를 해체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전승 시스템. 매년 1기수를 뽑아 2학년 1년 동안 활동한 뒤 악기까지 물려주는 것이었다. 서울대에 다른 밴드들이 있었지만 이런 시스템을 갖춘 것은 처음. 지금까지 이렇게 모인 멤버가 모두 196명이다.

순수 아마추어리즘도 이들만의 무기다. 멤버들은 샌드페블즈의 이름으로는 프로 활동을 못하게 돼 있다. 멤버 중 한 사람도 프로 가수가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윤 전 사장은 축산학과 졸업생이 아니다. 반유신 데모 사태 때문에 학교에 정을 주지 못하고 중퇴한 것. 그는 단국대 행정학과로 옮겼다가 78년에는 행정고시에 합격해 농림부 국제농업국장, 농업통상정책관, 대통령비서실 농어촌비서관, 농산물유통공사 사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전북대 농업생명과학대 동물소재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가수를 안 한 것에 대해 그에게 후회는 없다. "어차피 아버지 때문에도 프로로 활동하지 못했겠지만 노래는 즐길 때 가장 아름답다는 창단 당시 생각에도 변함이 없어요." 하지만 그가 요즘 시선이 꽂혀 있는 것도 음악. "이번 40주년 공연을 보고 1기들을 방송에 출연시키겠다는 제의가 왔어요. 방송을 통해 좀 알려지면 1기로 실버밴드단을 만들고 싶어요. 불우이웃 찾아가는."

이은호 선임기자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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