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분명 '열심히 정치를 하고 있는 사람'이다. 최근 그가 1,500억원 상당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을 때 현재의 정치권은 "정치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 밝혀라"는 식으로 공개질의를 던졌다. 하지만 그는 그 질의에 상응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현재의 정치인과 언론이 질의한 정치라면 그는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을 게다.
앞서 그는 박원순 씨가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자 양보를 위한 단일화 무대를 만들었고, 서울시장 선거 직전 박 후보 사무실로 찾아가 지지 편지를 발표했다. 이러한 행위는 그가 판단하는 정치활동과 현재 일반화한 정치활동이 처음으로 접점을 만든 상황이었다. 단일화 선언과 지지편지 전달은 어떤 관점에서 보아도 정치행위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를 향해 "정치를 하는 것이냐 않는 것이냐"는 식의 질의가 있을 여지는 없었다.
올해 초부터 '정치활동' 시작
그의 첫 정치활동은 올해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3월 22일 그는 관훈클럽이 주최한 관훈포럼의 연사로 나왔다. 당시 카이스트 석좌교수였던 그는 의외로 흔쾌히(?) 초청에 응해 주었다. 그가 관훈포럼에 요구한 조건은 "정치 문제는 언급하지 않을 것이며, 정치적인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2시간 동안 포럼이 진행됐다.
그는 1시간 가까이 이어진 주제 강연에서 정치란 단어는 물론 정치가 연상될 수 있는 어떠한 소재도 꺼내지 않았다. 강연 제목을 '기업가 정신'으로 잡은 그는 우리나라 대기업의 횡포와 중소기업의 애로점, 청년실업의 심각한 실태와 원인 등에 역점을 두고 강의를 이어갔다. 아울러 이러한 문제점을 알면서도 해결에 관심이 덜한 정부시책을 비판하고, '내가 한다면 이렇게 하겠다'는 대안 제시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는 당시 대통령 소속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의 위원이었고, 그날 아침에도 위원회에 참석하고 오는 길이었다고 했다. 위원회에서의 발언이라면 정치적 행위일 수 없지만 관훈클럽에서의 주장은 분명히 그의 정치행위로 보아야 했다.
강연 후 패널과의 질의응답이나 참석자들과의 대화 과정에서 그는 정치와 관련된 발언을 자연스럽게 내놓았다. "10여 년 전 30대 후반에 국회의원 제의를 받았다" "지난번 청와대에서 국무총리를 맡겠느냐고 물어보라고 했다는데 중간에 나에게 전달되지 않았다"는 등의 얘기를 했다. 그러면서 자문자답의 형태로 "나 혼자서는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 그러느니 차라리 (정치를)하지 않는 게 낫다"고 거듭 힘주어 말했다.
이후 그가 '혼자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과정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6월에 시작된 '청춘 콘서트'의 앞에 '희망 공감'이라는 별명을 붙인 것이 그러하고, 예기치 않게 벌어진 서울시장 보궐선거라는 정치판에서 박원순 후보와 함께 변화를 위한 공감을 확산해 나간 것도 그러한 행위의 연장으로 볼 수 있다.
그에게 그래서 "정치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 밝혀라"고 다그치는 일은 의미가 없다. 다만 그가 (적어도 올 3월 이후)열심히 하고 있는 정치를 기존 정치권에선 인정하려 들지 않고 있다는 점에 의미를 두어야 할 듯하다. 기존 정치권의 다그침은 그들의 방식을 기준으로 그들의 무대에 올라설 것이냐 말 것이냐를 선택하라는 추궁일 터이다. 그렇다면 안 원장의 대답은 계속 "…"일 수밖에 없을 터이다.
이젠 정치인으로서 언행 필요
정치를 하고 있느냐 아니냐, 정치인이냐 아니냐의 판단은 국민과 유권자의 몫이다. 좁게는 법과 제도를 기준으로 투표와 관련된 의미로 한정할 수 있겠고, 넓게는 영향력과 권위의 구심점 정도로 확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우리 사회는 좁은 의미의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의식이 사라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안 원장의 언행을 정치행위로 인정해야 하며, 그도 스스로 정치인임을 인정하고 언행을 해야 한다.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