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사람들은 그를 “한국에서 온 신”으로 부른다. “부처”, “성인”이라 칭하기도 한다. 신찬수(70)씨에 대한 네팔식 감사와 존경의 표시다.
지난 4년간 네팔 오지에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봉사단원으로 파견돼 활동한 그가 적지 않은 족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10년 전 신씨는 KOICA 해외봉사단에 생애 2번째 이력서를 냈다. 대학을 졸업하고 31년간 전북농촌진흥원과 지역 농촌지도소에서 농촌지도공무원으로 일하다 은퇴한 직후였다.
“고교를 졸업할 무렵 미국의 평화봉사단 피스코 단원들이 우리 땅에서 땀 흘리던 모습이 늘 뇌리에 남아 있었어요. 제가 공무원으로 일할 때도 운크라(국제연합한국재건단)가 우리 지역에 와서 봉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 나도 저런 일을 하겠다고 다짐했었죠.”
마침 봉사 단원의 연령 제한이 35세에서 61세로 대폭 높아지는 행운도 따랐다. 아내와 2명의 아들,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만류했지만 그의 오랜 꿈을 막을 순 없었다. “지금 아니면 평생 할 수 없다”며 가족들을 설득했다. 봉사 단원 선발 절차 중 하나인 영어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6개월 동안 EBS 수능 방송을 외우다시피 하며 공부에 매진했다. 드디어 2001년 영어 시험, 적성검사, 두 번의 인터뷰를 거쳐 봉사 단원으로 선발됐다. 당시 KOICA 봉사 단원 가운데 최고령이었다.
그는 필리핀 일로일로주의 라나스 마을에서 첫 번째 농촌지역개발운동을 시작했다. 3~4㎞ 떨어진 곳에서 물을 길러 나르는 마을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제일 먼저 우물을 팠다. 우물 2개엔 ‘우리의 생명수 코리아'라는 표지판이 세워졌다. 우기 땐 거의 매일 비가 오는 필리핀의 날씨를 고려해 도로를 포장하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신씨가 4년 간 이 마을에서 봉사하고 귀국한 2006년, 라나스 마을은 주정부가 매년 실시하는 종합행정평가에서 최우수 마을로 선정됐다.
이듬해 4월 신씨는 네팔로 떠나 봉사활동을 이어갔다. 수도 카트만두에서 자동차로 4시간 이상 가야 하는 누아코트시 게르쿠타르라는 산골 마을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마을개발위원회’를 만들어 식수, 도로 포장, 마을회관 설립 같은 기초생활환경 문제를 해결하는데 힘을 보탰다. 1,000m²의 땅에 과채류 재배시설을 만들어 파종부터 비료주기, 농약살포 등 영농기술을 보급해 주민 소득을 올렸고, 사비를 털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기도 했다.
그는 “필리핀은 한국전쟁 때 우리를 도와준 나라여서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이었고, 네팔은 아시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라 도와주고 싶었다”고 했다.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에 타향살이를 하는 일이 쉽지 만은 않았을 터. “처음엔 시큰둥하던 마을 사람들도 함께 살면서 동네 이웃으로 지내니 이내 마음을 열더라고요.”
KOICA가 주관하는 올해 해외봉사상 수상자로 선정된 신씨는 25일 경기 성남의 KOICA 본사에서 대통령상을 받는다. 그는 “10여 년간의 봉사를 통해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 삶인지 알게 됐다”고 했다. 현재 다니는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더 공부해 다문화 가정과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해 일하고 싶은 게 남은 목표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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