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의 고민은 깊고 길었으나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금융위원회는 외환카드 주가조작사건으로 유죄가 확정된 론스타에 조건 없는 매각명령을 내렸다. 론스타의 안전한 한국 탈출 길을 열어준 셈이다. 다만, 금융위는 하나금융이 론스타와 체결한 외환은행 매매 계약에 대해 상황 변화를 이유로 새로운 내용의 승인 신청서를 제출할 것을 통보할 방침이다. 이는 '인수 가격을 낮추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왜 조건 없는 처분명령인가
18일 금융위 의결에 따라 론스타는 외환은행 보유 주식 10% 초과분을 6개월 내 처분하면 된다. 전날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론스타에) 이익을 줄 생각도 없지만 불이익을 의도적으로 줄 생각도 없다"고 밝혀 주식처분 기간을 단축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으나, 사실상 론스타가 원하는 방식대로 결정된 셈이다.
금융위는 은행법이 정한 최대 기간인 6개월을 부여한 데 대해 "처분 주식 수와 과거 유사 사례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론스타가 처분해야 할 주식 수가 역대 최대인 약 2억6,500만주인데, 최근 3개월간 일평균 거래량(약 140만주) 만큼 매일 처분하더라도 180일 이상 소요된다는 것이다. 또 2004년 12월 당국의 승인 없이 녹십자생명보험의 대주주가 된 사람의 보유지분 400만주를 처분할 때 6개월의 기간을 줬던 전례도 감안했다는 설명이다.
금융위는 야당과 시민단체 등이 요구해 온 징벌적 매각명령도 '적격성 심사제도의 목적'과 '국내외 사례' 등을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석준 금융위 상임위원은 "대주주 적격성 심사 및 주식처분 명령제도의 목적은 '부적격자 배제'이기 때문에, 처분방식을 특정하지 않더라도 제도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며 "강제처분 명령 자체가 징벌적 의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또 해외에서도 시장에서 주식을 처분하도록 강제 명령한 사례가 확인되지 않은데다, 만일 시장 내 처분명령으로 일시에 많은 매도물량이 나오면 주가하락에 따른 소액주주의 재산 피해도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산업자본 판명돼도 대세 지장 없어
금융위는 론스타의 주식 처분명령에 앞서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지적에 "산업자본 여부 판단이 주식 처분명령에 선행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론스타가 산업자본일 경우 2003년 9월 론스타의 외환은행 대주주 승인 자체가 원천무효라는 주장인데, 금융위는 론스타가 산업자본이라 할지라도 크게 달라질 게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금융위는 론스타가 산업자본으로 판단될 경우 4% 초과 보유주식을 팔아야 하는데 이 때도 조건 없이 처분할 수 있고, 산업자본을 이유로 금융위가 강제 처분하더라도 역시 '징벌적 처분명령'을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2003년 외환은행 인수 당시 론스타를 산업자본으로 볼 근거가 없지만, 설사 산업자본이라 하더라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승인을 취소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지분 인수계약 승인과 관련, "새로운 자회사 편입승인 신청서를 제출할 것을 통보하겠다"고 밝혔다. 1년 가까이 인수가 지연됨에 따라 그 사이 변화된 상황을 담은 새로운 신청서를 제출하라는 것인데, 하나은행 측에 '인수가격을 낮추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위 고위관계자는 "외환은행 주가가 많이 떨어져 현 계약가격(4조4,059억원)으로는 무리라고 본다"며 "하나금융 쪽에서도 가격을 내린다고 했으니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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