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대학을 세 유형으로 나누면, '서울대'와 '서울약대' 그리고 '서울상대'로 구분된다고 한다. 서울지역에 소재한 대학이 서울대, 서울에서 약간 먼 대학이 서울약대, 그리고 서울에서 상당히 먼 대학이 서울상대란 것이다. 그런데 오래전 서울을 중심으로 대학을 구분하던 농담이 오늘날 대학가의 지각변동을 초래하는 '폴트라인'(fault line)으로 등장하고 있다.
교육적 가치 결여된 대학평가
얼마 전 교육과학기술부와 대학구조개혁위원회의'정부재정지원 제한대학' 명단이 발표되면서 대학가가 술렁이고 있다. 전문대를 포함해 전국 346개 대학 가운데 43개 대학들이 재정지원제한대학의 불명예 낙인이 찍혔다. 이들 대학의 지리적 분포가 수도권 11개, 지방은 32개나 됐다.
문제는 상호 독립적이어야 할 대학평가지표들이 상호의존적이란 점이다. 어느 하나의 지표가 부실하면 나머지 지표들이 연쇄적으로 타격을 입게 되는 구조인 것이다. 10개의 평가지표 가운데 가중치가 높은 '신입생 충원율'과 '재학생 충원율' 그리고 '졸업생 취업률' 등 평가지표 대부분이 지방대에 치명적인 것들이다. 신입생 충원율이 수도권 대학들에 비해 낮을 수밖에 없는 지방소재 대학들의 경우 재학생 충원율 또한 영향을 받게 된다. 해마다 입시철이 되면 교수자존심 다 내려놓고 고3 담임들 설득해 어렵사리 학생을 뽑아 놓으면 입학생의 절반가량이 재수를 선택하고, 2학년과 3학년 과정이 끝날 즈음이면 나머지 절반의 학생들마저 대학편입을 통해 서울 소재 대학으로 '학교 갈아타기'를 한다. 지방대의 졸업생 취업률이 저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어느 나라의 대학평가지표도 완전할 수는 없다. 하지만 수도권 쏠림 현상과 같은 교육 외적인 사회현상을 지방대에 전가시키는 형태의 불공정 게임은 문제가 있다. 지금 평가 위기로 내몰리는 지방 소재 대학들은 학교의 자구노력이나 교육 여건과는 상관없이 단지 수도권과 먼 지역에 위치했다는 이유만으로 과거 지역명문대학, 지역거점 대학의 자존심마저 무너져 내리고 있다.
물론 이들 상당 수 대학들이 과거 대학설립준칙주의를 빌미로 지역 정치인들의 입김에 의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기반이 취약한 대학들일 수 있다.
지역에 미치는 영향도 고려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을 저지른 대학이 아니라면 이들 지방 소재 대학들에 대한 교육적 배려가 있어도 좋았을 아쉬움이 남는다.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고 대학을 압박해 퇴출시키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참으로 손쉬운 일이다. 부실대학에 공적자금을 쏟아 넣는 일은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이들 대학의 쪽박마저 깰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대학평가 결과 후순위 제재대학의 명단에 오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향후 재기의 가능성에 쐐기를 박히는 것일 수 있다. 기업의 퇴출과는 달리 대학에 대한 제재는 교육적 가치가 수반돼야 한다. 하위 15%를 추려낼 목표를 정해놓고 상대적 서열경쟁을 유도하는 평가방식은 너무 시장주의적 접근 방법이란 생각이 든다. 더구나 예술계열 학과들마저 천편일률적인 취업률 지표를 들이댄 평가결과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향후 퇴출의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를 이들 '정부재정지원 제한대학'들의 처리문제는 보다 신중함이 요구 된다. 이들 대학의 퇴출로 야기될 문제들이 간단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방 소재 대학들이 사라지면 지역의 공동화현상이 일어나고, 중소도시나 군ㆍ면 단위 지역들이 활력을 잃게 된다. 대학의 지역사회 발전과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평가는 무능력한 지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극약처방일 수 있다. 그래서 평가의 신중함이 요구되는 것이다.
오성삼 건국대 교수 ·전 대교협 평가지원부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