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재청구 끝에 이국철 SLS그룹 회장을 구속하면서 그가 공개하겠다고 밝힌'비망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재계 고위 인사들의 비리를 망라해뒀다는 문제의 비망록을 두고 '화약고'가 될 것이라는 시각부터, 이 회장 스스로 명예훼손 혐의를 추가하는 족쇄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혼재한다.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에 대한 금품 제공 의혹을 폭로한 뒤부터 이 회장은 자신이 구속될 경우 비망록을 공개하겠다고 수 차례 공언했다. 그에 따르면 비망록은 지난 8월부터 자필로 작성된 5권 분량으로, 신 전 차관 관련 내용 등 기존에 폭로했던 인사들의 의혹을 포함해 정치인, 경제인, 법조인의 구체적 비리를 담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17일 현재까지 비망록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이 회장은 지난 10월9일 기자회견에선 "검찰이 비망록을 확보하기 위해 나와 관련된 사람들을 압수수색 했고, 이를 확보하고자 나에게 사정을 했지만 가져가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14일 기자회견에선 다소 태도를 변화해"비망록의 주된 내용은 검찰 관련으로, 검찰은 신 전 차관 관련 부분 및 검사장급 인사 3명의 비리가 담긴 비망록 일부와 함께 비망록 5권을 압축해둔 문건을 가져갔으면서도 수사를 하고 있지 않다"고 말을 바꿨다.
이 회장의 이런 태도를 두고 비망록은 SLS그룹 해체 경위에 대한 검찰 수사를 촉구하기 위한 '허세'로 신뢰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이 회장은 "검찰이 나를 거짓말쟁이로 몰아 앞으로 나올 비망록에 대해 신빙성이 없다고 작업하는 것"이라고 각을 세웠다. 반면, 검찰은 "비망록을 가지고 와라. 수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모두 수사하겠다"는 입장이다.
현재까지 비망록 5권 중 두 권이 두 군데 언론사로 보내졌지만 3권의 행방은 묘연한 상태다. 공개된 비망록엔 종교계 인사가 등장해 이 회장의 폭로를 막는 내용과 함께 정권 실세의 측근으로 로비 창구 의혹이 제기된 대영로직스 대표 문모씨 관련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의 말과 달리 아직까지 정권실세의 비리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문씨 관련 의혹은 정치권에서도 지속적으로 제기돼 검찰 입장에서도 단순히 의혹으로만 끝내기엔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이 회장 구속과 동시에 도주 중에 있던 문씨를 체포한 검찰은 이같은 의혹을 조사 중에 있지만, 정작 이 회장은 관련 진술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권실세에 대한 로비 목적으로 이 회장에게서 SLS그룹 자산과 현금 수십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문씨는 의혹을 모두 부인하고 있다. 문씨는 "(정권 실세의)보좌관 A씨와 오고 가다 만난 적은 있지만 특별한 관계는 아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장의 매형이자 SP해양의 대표인 황모씨는 검찰 조사 때 "지난해 10월부터 수 차례에 걸쳐 8억9,000만원을 대영로직스에 빌려줬는데 이 돈이 한나라당 쪽으로 흘러간 것으로 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검찰은 계좌 추적을 통해 이 돈이 정상적으로 대영로직스로 넘어가 회계처리까지 된 사실을 파악한 것으로 전해져 의혹의 실체를 두고 혼란만 가중되는 모양새다.
권지윤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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