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뭄바이에서 170㎞ 떨어진 뿌네시의 빈민가. 오후 5시만 되면 거리는어김없이 아름다운 하모니로 채워진다. 인도 불가촉천민(달리트) 계급 아이들로 구성된 '바나나 합창단'의 공연이 열리는 것이다.
'바나나 합창단'을 만든 사람은 성악가 김재창(54)씨다. 2006년부터 4년 간 아프리카 케냐의 빈민가 아이들을 모아 '지라니 합창단'을 만들었던 인물이다.
그가 지난 달 26일 자신이 대표로 있는'바나나 합창단'의 첫 내한 공연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이들은 한 달 가량 20여개의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합창단 아이들의 3분의 1은 부모가 없어요. 불가촉천민 아이들이 대부분이죠. '가난하면 꿈도 가난해야 돼?'라는 생각으로, 노래를 통해 이 아이들에게도 내일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김 대표가 합창단 이름을 '바나나 합창단'으로 지은 이유다.'바나나'는 '세우다, 건축하다, 변화시키다'라는 의미의 힌디어다.
큰 뜻을 품고 인도로 날아간 김 대표였지만 합창단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진 고난의 연속이었다. 공식 연습 첫 날부터 단원으로 뽑았던 100여명의 아이들이 아무도 연습 장소에 나오지 않았다. "'도레미'가 뭐냐"고 물어오는 아이들을 보면서 과연 합창을 할 수나 있을까 의문이 들었던 날도 허다했다. 작년 아이들에게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가르칠 때는 아이들이 너무 못 하는 바람에 그만둬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끼니를 걱정하는 아이들에게 '음악'이 사치는 아닐까하는 회의감도 시시때때로 엄습했다.
"그럴 때마다 합창을 배우며 서서히 눈빛에 생기가 도는 아이들을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의 표정이 변하면 생각까지 바뀌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될 거라고 자신했어요."
이번 내한 공연을 위한 방한 역시 쉽지 않았다. 아이들의 부모들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겨우 설득해서 마음을 돌린 후엔 여권이 문제였다. 출생신고조차 되어 있지 않은 아이들이 태반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도 관공서에선 "왜 이렇게 많은 아이들의 출생신고를 한꺼번에 하느냐"며 뒷돈까지 요구했다. 우여곡절끝에 결국 합창단원 26명 중 12명만 한국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바나나 합창단'이 이렇게 성장한 걸 그래서 그는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이제 합창단은 인도 전통 음악 뿐 아니라 바나나 합창단의 대표곡인 바나나 보트 송부터 시작해 아리랑 같은 한국 전통 민요, 한국 아이돌들의 노래까지 한 번 공연에 16개의 곡을 척척 소화할 만큼 '프로'가 됐다. 앵콜도 나오고, 관객들의 기념 촬영 요청도 쇄도했다.
그는 "음악이 이렇게 사람을 변하게 하고 감동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른 꿈도 꾸고 있다."아프리카 최빈민국 말라이나 방글라데시 등 다른 나라에서도 합창단을 만들어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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