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발연구원(KDI)이 흥미로운 보고서를 냈다. 심각한 초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동거나 혼외출산 같은 젊은이들의 '유연한 생활양식'이 우리 사회에 정착될 수 있게 도울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다. 이라는 이 보고서는 기혼가정의 출산을 장려하는 데 초점을 둔 기존 정책을 보완하자는 취지에서 이런 주장을 했는데, 결혼과 가족에 대한 인식은 물론 제도 정비까지 요구될 정도로 급변하는 현실을 반영해 주목된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인구대체율(2.1)을 크게 초과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6~1.8명, 최근엔 1.2명대로 추락했다. 세계 출산율 비교대상 222개국 중 217위이다. 특이한 점은 저출산의 배경으로 꼽히는 산업화와 도시화를 똑같이 겪었지만 유럽 선진국들은 OECD 평균 출산율을 유지하는 반면, 일본(218위) 대만(219위) 싱가포르(220위) 같은 아시아 선진국들만 우리와 함께 초저출산의 늪에 빠졌다는 사실이다.
보고서는 이런 차이가 산업화ㆍ도시화 과정을 앞서 겪은 유럽 선진국들의 경우 남녀 간 파트너십과 가족관계의 근본적 변화를 사회가 잘 수용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실제로 유럽 선진 8개국을 보면 혼인가정은 절반 정도인 반면, 동거와 독신이 각각 4분의 1이다. 그런데도 이들 국가의 출산율이 1.7 이상을 유지하는 건 전체 출산의 40~60%나 되는 혼외출산이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양육비 보조 등 제도적 지원에 차별이 없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인구는 일정 수준의 경제 성장동력을 유지하는 데 불가결한 토대다. 따라서 동거나 혼외출산에 대한 제도적 지원을 강화해 초저출산의 늪을 벗어나자는 제안은 참신하다. 다만 아직은 가족 중심 출산 장려책에 주력하면서, 젊은이들이 되도록 가정을 이룰 수 있게 지원하는 게 우선이라고 본다. 관습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비혼가정의 자녀교육과 노후 독신자 생활지원에 들어갈 사회적 비용을 감안할 때 그게 더 경제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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