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식 분위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두들겨 맞았다. 아무한테나 '빨갱이'를 갖다 붙이는 한 중년 여성에게 엉겁결에 뒷덜미를 맞더니 동국대 발언으로 여러 보수 언론으로부터 집단 뭇매를 맞았다. 그런데 이 사안은 기자가 보기에도 맞을만 했다.
박 시장이 15일 동국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양강좌에서 "여러분은 어렵게 등록금 인하투쟁을 해왔는데 등록금 철폐투쟁을 왜 하지 않느냐"고 말했을 때 '박 시장은 왜 그렇게 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 시장은 서울시립대 등록금 수준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다. 그의 말 한마디면 서울시립대도 반값 등록금이 아니라 무상교육까지 실현할 수 있다. 서울시 공무원이야 시장의 방침이니 토목분야든 복지분야든 지방세를 올려서라도 재원을 마련할 터이다. 우리 사정에 대학 등록금 철폐가 적절한지 여부는 차치한다 해도 권한을 가진 박 시장은 반보(半步)밖에 가지 않으면서 대학생들에게는 일보(一步)를 가라 하니 '무책임한 선동'이라는 낙인이 붙어도 할말이 없을 것이다. 박 시장은 16일 취임사에서 "갈등과 대립을 잘 조정하는 시장이 되겠다"고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갈등과 대립을 조장하면서 시작하는 모양새가 됐다.
솔직히 시장 집무실의 기울어진 책장을 보는 것만큼이나 초반 행보가 불안하다. 말 한마디로 불필요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쓸데없는 분란을 야기하는 악순환을 또 보게 되는 게 아닌가 싶어서다. 얼마 되지 않는 재임기간이 말 잔치와 이를 둘러싼 논란, 그리고 퍼포먼스와 이벤트로 점철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다.
박 시장은 시민운동가로서 서울시 행정의 책임을 진 첫 케이스다. '골드 러시'를 들어 비유하자면 박 시장은 금을 캐낸 럭키 보이가 아니라 이제 삽을 든 초보 광부에 지나지 않는다. 망해도 그만인 혈혈단신의 광부가 아니라 무수한 서울시민들로부터 이러저러한 투자자금을 받아 삽질에 나선 기업가형 광부라 할 수 있겠다. 그에 대한 시민들의 투자는 단순히 반 한나라당에 대한 반발만이 아니라 정치와 행정을 이끌 새로운 시각과 창조적 역량에 대한 기대감에서 일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에서 금을 캐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역대 서울시장 가운데 '잘했다'는 소리를 들은 시장을 별로 보지 못했다. 큰 사업을 하나라도 할라치면 온갖 이해가 얽혀있고 민원도 폭주한다. 박 시장의 공언대로 이해와 갈등만 잘 조정해도 역대 최고시장이라는 평을 들을 만 하다. 하지만 갈라지고 찢어진 우리 사회의 실정상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본인 스스로 더 잘 알 것이다. 더구나 어디선가 큰 사고라도 터지면 이러저러한 욕을 뒤집어쓰는 게 서울시 업무의 특성이다. 오세훈 전 시장이 벌여놓은 일을 수습하는 과정도 반발과 민원 등으로 쉬운 일이 아니고 복지든 뭐든 작정한 일을 새로 벌이는 것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충분한 시간과 정교한 플랜을 가지고 덤벼도 성공 여부를 장담하기 어려운 게 서울시 행정이지만 박 시장에게 주어진 시간은 불과 2년6개월이다. 더욱이 박 시장 개인 뿐만 아니라 시민운동세력의 역량이 평가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행동으로 말해주기도 빠듯한 시간이다. 기대가 실망으로 변하는 것도 한 순간이다.
정진황 사회부 차장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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