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백만장자들이 워싱턴 의사당을 습격했다. 납세자라면 으레 세금을 깎아달라고 해야 할 텐데 이들은 자신들이 국가에 내는 세금이 적다며 의회를 찾아 세금 인상을 위한 실력행사를 한 것이다.
‘애국적 백만장자의 모임(PMFS)’ 회원 20여명은 16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의원들에게 보내는 서한을 들고 의회를 방문했다. 138명이 서명한 서한은 “운이 좋건 나쁘건 1년에 100만달러(약 11억 3,200만원) 이상을 버는 납세자에게는 더 많은 세금을 물려야 한다”는 내용이다. 서한은 과세 반대 시민운동가인 그로버 노르퀴스트에도 발송됐다. 이들은 “부자들에게 공정한 책임을 요구하지 않는 슈퍼위원회의 어떤 결정에도 반대한다”고 말했다.
민주 공화 양당의 상ㆍ하원의원 12명으로 구성된 슈퍼위원회는 23일까지 향후 10년간 최소 1조2,000억달러의 재정을 감축하는 안을 확정해야 한다. 그러나 증세를 주장하는 민주당과 메디케어(건강보험) 등 사회보장 프로그램 축소를 고수하는 공화당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 협상 타결을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백만장자들의 요구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시작된 감세 혜택을 끝내라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가 2000년대 초 막대한 재정흑자에 힘입어 최고 소득세율을 39.6%에서 35%로 낮추는 바람에 소득불평등만 악화했다는 것이다. 당시 행정부는 부자들의 세금을 많이 깎아주면 소비가 늘어 저소득층에게까지 혜택이 돌아간다는 ‘낙수효과’를 기대했으나 10년 뒤 감세의 과실은 대부분 부자들에게 돌아갔다.
초당파 기구인 미 조세정책센터(TPC)에 따르면 올해 연 소득이 100만달러를 넘는 개인은 전국적으로 28만9,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PMFS는 오바마 행정부의 일자리 법안과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의 버핏세 도입안을 지지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9월 부자 증세를 통해 4,670억달러의 고용 창출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콜럼비아 비즈니스스쿨 에릭 숀버그 교수는 “세금 감면 폐지가 백만장자에게 미칠 후폭풍은 죽은 파리 한 마리가 소풍에 영향을 주는 정도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결성된 PMFS에는 구글 전ㆍ현직 임원을 비롯, 월가의 대표적 비관론자 누비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배우 에디 팔코, 영화제작자 애비게일 디즈니 등 20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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