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전 11시께 경기 가평군 청평면에 위치한 H주유소. 한국석유관리원 직원들과 경찰, 소방관, 비파괴검사 민간 전문가 등 가짜석유 합동단속반 10여명이 들이닥쳤다. 놀란 업주와 직원들이 미처 손쓸 틈도 없이 이들은 곧바로 시료를 채취해 간이검사를 실시, 가짜석유 판매 사실을 확인했다. 출동 10여분만이었다.
이 때부터 단속반원들은 더 바빠졌다. 전파탐지기를 작동시키던 한 단속반원이 업주의 바지 호주머니에서 리모컨 하나를 찾아냈다. 진짜석유와 가짜석유를 번갈아 나오게 하는 조작스위치를 움직이는 리모컨이었다. 곧이어 산업용내시경으로 주유기 바닥을 살피던 다른 단속반원이 주유기에 가짜석유를 흘려보내는 이중배관을 발견했다. 진짜석유와 가짜석유가 잘 섞이도록 공기를 불어넣기 위해 비밀탱크에 연결해놓은 압축공기호스도 찾아냈는데, 이는 지난 10월 경기 화성시에서 발생한 주유소 폭발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된 바 있다. "가짜석유라니 말도 안된다"며 펄펄 뛰던 업주는 힘없이 소파에 주저앉았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비파괴검사 전문가들이 '007 가방' 크기의 장비를 하나 꺼내더니 주유소 콘크리트 바닥을 훑기 시작했다. 지하매설물 탐지 레이더(GPR)였다. 가짜석유 시료와 불법 조작장치 확보만으로도 업주에 대한 처벌이 가능했지만, 첨단 레이더 장비까지 동원한 것은 비밀탱크까지 찾아내 재영업 가능성을 아예 없애기 위함이었다.
탐색방향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3시간 가까이 뒤진 결과 노트북 화면에 일부 굴곡이 나타났다. 세차장 쪽이었다. "잡았다"는 환호가 터져나왔다. 결국 4시간여 만에 세차장 인근 바닥에 설치된 3개의 비밀탱크를 찾아냈다. 비밀탱크의 맨홀은 세차직원의 대기장소로 이용되는 작은 부스 아래에 숨겨져 있었다. 가짜석유를 공급받을 때는 부스를 잠시 이동시키는 식으로 비밀탱크를 위장했던 것.
단속반 관계자는 "그간 주유소 폭발사고 현장 등에서 시범테스트를 통해 가능성을 확인했던 GPR를 단속현장에 투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가짜기름을 팔기 위한 수법이 갈수록 지능화하는 만큼 우리도 첨단장비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가짜석유 적발 내용을 살펴보면 혀를 내두를 만하다. 경기 수원시의 S주유소는 지하저장탱크 안에다 작은 철판조각을 하나하나 용접하는 위험한 방식으로 박스형태의 비밀탱크를 하나 더 설치했다. 인천의 I주유소는 주유원의 신발 바닥이나 장갑에 자석을 붙여 특정 위치의 바닥을 밟거나 주유기를 만지면 가짜석유가 나오게 했다. 주차장에서 쓰이는 차량번호 인식기로 단속차량을 구분하는가 하면 주유기 조작장치를 전등 스위치로 위장한 경우도 있다.
석유관리원 관계자는 "앞으로 단순검사 위주의 업무에서 탈피해 석유 및 용제 모니터링분석시스템과 첨단과학장비를 적극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가짜석유: 휘발유에 벤젠 등 화합물을 첨가해 섞어 파는 석유. 진짜 석유에 비해 폭발위험이 높고, 연비도 30~40% 떨어져 엔진을 망칠 수 있다. 특히 진짜석유의 절반 이하의 가격으로 제조, 마진을 크게 남길 수 있어 일부 업주들이 제조 유혹에 흔들리기도 한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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