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16일 의원총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와 관련, 기존의 '선(先) 투자자ㆍ국가소송제도(ISD) 폐기' 당론을 재확인하자 한나라당에서는 더 이상 국회 처리를 미룰 수 없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협상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여전히 "민주당의 상황을 지켜보자"는 목소리도 있어 향후 처리과정이 주목된다.
홍준표 대표는 이날 민주당이 한미 FTA 비준안 처리를 위한 새로운 조건으로 ISD 폐기 또는 유보를 위한 즉각적인 재협상에 착수한다는 양국간 서면 합의를 요구한 데 대해 "양국의 책임 있는 분들이 ISD 문제에 대해 재협상하기로 했으면 그걸로 끝난 것"이라며 "거기에 다시 (문서로) 해오라고 하는 건 외교 관계상 무리"라고 말했다.
홍 대표는 민주당 의총 직후 황우여 원내대표 등과 긴급회의를 가진 뒤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밝혔다. 김기현 대변인도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에 대한 결례의 도를 넘어 모욕에 가까운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이 24일 본회의에서 한미 FTA 비준안을 강행 처리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홍 대표는 협상파인 남경필 외교통상통일위원장에 대해 "남 위원장이 그 사이 언론의 조명을 너무 받았다"고 말했다. 또 "재선과 3선 이상 중진은 국회법 절차에 따라 한미 FTA를 처리한다는데 아무도 이의가 없었다"고도 했다.
하지만 황 원내대표를 비롯한 협상파들은 상황을 좀 더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황 원내대표는 "우리도 일단 내일 의총을 열어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고 당의 입장을 정하겠다"고 말했다. 당내 '국회바로세우기모임' 소속 의원 7명도 국회 의원회관 로비에서 단식중인 정태근 의원을 찾아 긴급회동을 갖고 합의 처리 노력을 끝까지 해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한나라당은 이날 예정된 의총을 17일로 연기했다. 민주당이 기존 당론을 재확인한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의총을 열어 당내 이견만 노출시킬 경우 향후 처리과정에 득이 안 된다는 판단에서다. 이런 가운데 당장은 아니지만 홍 대표가 손학규 민주당 대표를 만날 가능성도 있어 극적인 해법이 도출될지 주목된다.
청와대 박정하 대변인은 이날 민주당의 의총 결과와 관련,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국회 논의를 좀더 지켜보겠다"며 "의회 민주주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대통령은 믿지 못하고 미국 대통령을 믿는 것은 다른 종류의 사대주의가 아니냐"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한편 황 원내대표와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는 이날 저녁 회동을 갖고 민주당 의총 결과에 대한 의견을 나눴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 한나라당 내 협상파 의원 10여명도 저녁 모임을 갖고 여야 합의 처리를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뜻을 재확인했다.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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