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대학도서관에서 발견된 조선시대의 필사본 시집에는 정약용을 비롯한 당대 지식인들의 시가 담겨 있었다. 그런데 시집 안에는 라는 또 하나의 시집이 수록되어 있었다. 초부(樵夫)는 글자 그대로 나무꾼. 조선시대 최하층 천민인 노비를 뜻한다.
17일 밤 10시 KBS1 '역사스페셜'은 조선시대 노비 출신 시인 정초부의 삶을 조명한다. 조선 후기 최고 시인들의 작품을 담은 에는 그의 시가 11수나 실려 있다. '동원아집(東園雅集)' 같은 양반 시회(詩會)에 초대받아 함께 시를 지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그의 시에 감명 받은 양반들이 그가 살던 양근(지금의 경기 양평) 월계협으로 직접 찾아오기까지 했다고 한다.
계급 차별이 엄격했던 조선시대에 어떻게 교육의 기회가 없는 노비가 시를 쓸 수 있었을까. 운율과 음의 높낮이 등을 맞춰 기승전결에 맞게 풀어내는 한시를 짓기 위해서는 10년 이상 공부해 한자를 깊이 이해해야 한다. 게다가 15개 내외의 규칙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문학성까지 담아 내는 한시 짓기는 양반 조차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당대의 시인으로 명성을 떨칠 수 있었던 것은 재능을 알아보고 자신의 아들과 함께 글공부를 하도록 배려한 주인 덕분이었다. 주인의 아들 여춘영은 노비 정초부를 스승이자 친구처럼 여겼다. 여춘영의 문집 에는 정초부에 대한 시와 두 사람이 함께 지은 시가 실려 있고 그의 죽음을 애도한 제문도 남아 있다. 여춘영은 정초부의 시를 사대부 사회에 널리 소개해 그를 세상에 알렸다. 정초부가 43세 무렵에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 양인이 될 수 있도록 도운 것도 여춘영이다. 하지만 시인으로서 명성에도 불구하고 정초부는 나무꾼 신세를 면치 못하며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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