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31)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집시 기타 연주자다. 플라멩코 기타의 대가를 연상시킨다 해 '한국의 파코 데 루치아'로 불리기도 한다. 2009년 첫 앨범 '집시의 시간'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그가 2년 만에 새 앨범 '슬픔의 피에스타'를 내놓았다. 토종 한국인이 그려낸 스페인의 뜨거운 태양과 집시의 애환은 화려하고 경쾌하면서도 쓸쓸하고 애처롭다.
"이번 앨범은 1집보다 더 강렬하고 복잡한 연주가 많아요. 듣는 분들이 어려워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예상이 빗나갔어요."
'슬픔의 피에스타'는 박주원의 기량이 무르익었음을 보여주는 앨범이다. 연주는 확신에 차 있고 군더더기가 없으며 강약을 조절하는 균형감이 탁월하다. 연주곡 위주였던 1집에 비해 새 앨범에는 보컬곡이 두 곡 포함됐다. 1집에 스캣으로 참여했던 정엽이 '빈대떡 신사'를 유머러스하게 재해석했고, 베테랑 최백호는 1977년 데뷔 이후 처음으로 타인의 앨범에 목소리를 선물했다.
"'방랑자'는 원래 바이올린으로 초안을 잡아뒀던 곡인데 어느 날 최백호 선생님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갑자기 그 곡이 떠올랐어요. 선생님의 목소리가 잘 어울릴 것 같았어요. 거절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죠." 까마득한 후배의 제안에 선뜻 응한 최백호는 녹음실에서 4시간 넘게 물 한 모금 안 마시고 곡을 완성했다.
타이틀 곡 '슬픔의 피에스타'에선 활기찬 룸바 리듬 위로 펼쳐지는 화려하고 속도감 넘치는 기타 연주가 격정과 우수를 동시에 담아낸다. 촘촘하게 이어지는 음표들의 달음박질 속에서도 그의 손놀림은 급하지 않고 여유롭다.
박주원의 음악 이력은 20년이 훌쩍 넘는다. 네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고 초등학생 때 클래식 기타를 잡았다. 고등학생 땐 클래식 기타반을 가장한 록 밴드에 가입하면서 잉베이 맘스틴, 리치 코젠, 토니 매컬파인 등 속주 헤비메탈 기타리스트에 빠져들었다. 서울예대 재학 때는 스피드메탈 밴드 시리우스에 들어가 앨범까지 냈다.
"한참 헤비메탈 음악을 들을 땐 팝음악도 멀리 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야니의 타지마할 공연에서 라몬 스타냐로라는 페루 기타리스트의 연주를 듣고 충격을 받았죠." 뒤늦게 자신이 진정 하고 싶어하는 장르가 어떤 건지 알게 된 그는 "어렸을 때 클래식 기타 교본에 수록된 스페인 곡들을 많이 연주한 덕분"에 어렵지 않게 방향을 선회할 수 있었다.
솔로 데뷔 앨범을 낼 때까지 박주원은 세션맨으로 활동했다. 이소라 윤상 조규찬 조성모 정엽 성시경 등의 앨범에서 기타를 연주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타성에 젖어갈 무렵 그는 "만 서른이 되기 전 나만의 음악을 담은 앨범 하나 만들어야 하지 않냐"는 생각에 과감히 세션 활동을 접었다.
그는 지난 2년간 '세션 기타리스트' 박주원이 아닌 '솔로 기타리스트' 박주원으로 살았다고 했다. 크고 작은 콘서트를 열고 팬들과 만났다. "처음 클래식 기타를 잡았을 때 꿈꿨던 걸 이뤘으니" 벌이는 절반 이하로 줄었어도 행복하단다. 최근엔 MBC '나는 가수다'와 '바람에 실려'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리기도 했다.
박주원은 12월 11일 오후 6시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2집 발매 기념 공연을 연다. 오랜만의 단독 공연이라 박주원 자신도 기대가 크다. "앨범에 담긴 사운드를 그대로 재현하고 싶진 않아요. 상황에 맞게 편곡하려고요. 연주곡 위주이지만 지루하지 않은 공연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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