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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제주의 당산나무 '폭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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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제주의 당산나무 '폭낭'

입력
2011.11.16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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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풍의 세월, 삶과 죽음을 위무하다

제주도는 바람의 섬이다. 시가지를 벗어나면 집과 밭은 물론 무덤까지 화산석으로 쌓은 방풍벽을 두르고 있다. 새들은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대가리를 향하고 공중에 엉버텨 정지비행한다. 거대한 풍력 발전기도 눈에 띈다. 뭍에선 생소한 바람의 이름만 수십 가지다. 돗?各?회오리바람), 도지주제(초겨울 갑자기 부는 바람), 겁선내(파도가 부풀어 오르며 덮치는 동풍), 어두엣바람(새벽이나 저녁에 부는 바람)…. 그리고 바람의 풍경을 보여주는 게 하나 더 있다. 폭낭, 육지 이름으로 팽나무다.

한라산 원시림을 제외하면 제주도에서 흔한 나무는 소나무와 폭낭이다. 뭍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자라는 모습은 사뭇 다르다. 바람이 불어오는 쪽은 가지가 빈약하고, 바람이 둥치를 쓸고 흘러가는 쪽은 풍성한 가지가 뻗어 있다. 한경, 애월, 조천, 구좌 등 겨울 바람이 매서운 북쪽 해안가가 특히 그렇다. 거칠게 빗질해 바람에 풀어 놓은 여인의 머리채 같은 나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제주 사람들은 예부터 폭낭을 당산나무로 삼았다. 한쪽으로 쏠린 폭낭알(팽나무 그늘) 탓에 댓돌과 평상도 바람의 반대 방향으로 놓여 있다.

"솔이(소나무)는 안 하고 폭낭에서 하제. 이유는 모르겠어. 어쨌든 포제(酺祭ㆍ제주 지역의 동제)는 꼭 폭낭 앞에서 지내야지. 사람 사는 부락에는 큰 폭낭이 반드시 있으니까."

제일 유명한 폭낭은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민속마을에 있는 폭낭(천연기념물 제161호)이었다. 그러나 이 나무는 지난 8월 태풍 무이파에 밑동이 꺾여 600년 생을 마감했다. 묻고 물어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로 갔다. 늙고 젊은 네 그루의 폭낭이 제주도의 매서운 겨울 바람을 제 몸뚱이로 그려내고 있는 곳이다. 나무는 천지간을 뒤흔드는 우레의 음파를 형태로 굳혀놓은 듯 보였다. 그 앞에서 포제에 대해 설명해주던 조희권(75) 할아버지는 그런데, 흘리는 말로 이 마을의 당산나무가 60여년 전엔 다른 폭낭이었다고 했다. 이유를 캐물었더니 입을 다물었다. 노인회관에서 한참을 죽친 다음에야, 한 할머니로부터 연고를 들을 수 있었다.

"버스 내리는 데 있제? 원래 거기 500년도 더 된 폭낭이 있었어. 4ㆍ3사건 때 하도 총으로 쏴 대서 죽어버렸지. 그때 새로 심은 폭낭도 이제 훌쩍 컸는데…."

'제주 4ㆍ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위원회'에 따르면 북촌리는 4ㆍ3사건 당시 단일 마을로는 가장 많은 462명이 희생된 마을이다. 당산나무가 서 있었던 동구는 사람들을 집합시키기 좋은 자리다. 위원회가 채록한 증언에는 경찰이 당산나무에 임산부를 매달고 대검으로 찔렀다는 것도 있다. 혹시 살아남은 사람들이 나무를 뽑아버린 것은 아닐까. 폭낭 아래에서 사진 모델이 되어준 현덕선(84) 할머니는 그러나 "식구 중에 남자 여섯이 도륙 났다"고만 간신히 말했다. 그때의 당산나무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끝내 얘기해주지 않았다. 살아남은 폭낭이 끄무레한 하늘 아래 우레 소리를 내는 듯했다.

중산간도로를 타고 와흘리로 갔다. 이곳의 폭낭은 제주 민속자료 제9-3호로 지정된 본향당(서낭당) 한가운데 우뚝 서 있다. 수령은 대략 400년. 마을 주민들은 아직도 이 폭낭이 삶과 죽음, 호적(戶籍)을 관장한다고 믿는다. 당신(堂神)은 소로소천국(수렵과 목축의 신)의 열한 번째 아들인 산신또, 처신(妻神)은 서울 서정승 따님애기라고 전해진다. 매년 음력 정월의 첫 정일(丁日)과 칠월 백중이면 여기서 영등굿을 볼 수 있다. 주강현 제주대 석좌교수는 "영등굿은 환웅이 데리고 내려왔다는 풍백, 우사, 운사 가운데 바람신 풍백의 전통이 남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북 해안 애월읍에서는 폭낭이 마당 안에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뭍에서 감나무나 밤나무를 집 안에 심는 것과 같다. 이런 집들은 대개 바람에 뜯겨나가지 않도록 지붕을 굵은 띠로 친친 감고 있다. 또 대개 그런 띠에는 까마귀가 바람을 피해 앉아 있다. 허리가 기역자로 굽은 할머니가, 또한 대개 그러한 집에선 평생을 파먹고 살았고 머지 않아 자신이 묻힐 밭을 무연히 바라보며 앉아 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쓸쓸하고 따듯한 경험이다. 올레니 트레킹이니 또 이젠 세계 7대 자연경관이니 하는 사달로 육짓것들이 섬을 들쑤시기 훨씬 전부터 내려온 제주도의 풍경, 바람의 풍경이 그러하다.

제주=글·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 열대와 한대식물의 교차로, 곶자왈을 아십니까

제주도 중산간 지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열대식물의 북방한계선과 한대식물의 남방한계선이 겹치는 곳이다. 곶자왈은 이곳의 독특한 숲과 지형을 일컫는 제주말이다. 나무, 덩굴식물, 화산암, 이끼가 어수선하게 섞여 간단없는 안개와 비 속에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는 숲이다. 해안에서 한라산으로 가는 제주도의 허리 지역이 모두 곶자왈이었는데, 무분별한 개발로 이제 제주 사람들도 곶자왈을 특정 지역의 고유명사로 착각하곤 한다.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에 지난 5월 문을 연 교래자연휴양림은 곶자왈의 생태를 가까이 접할 수 있는 곳이다. 2.3㎢의 넓이의 휴양림은 생태체험 코스, 오름 산책로, 초가 단지 등으로 이뤄져 있다. 왕복 4㎞ 생태 체험 코스가 곶자왈 속으로 난 산책로다. 잡석과 용암류, 화산이 만든 숨골과 풍혈 등이 섞여 있는 땅에 이끼류, 양치류, 초지성 식물, 가시 덤불 등이 사철 습윤한 공기를 먹으며 자란다. 1940년대 산전을 일구고 살았던 주민들의 움막터와 숯을 만들던 숯터도 남아 있다.

아직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인근 초지에서 방목하는 소가 산책로를 따라 무리 지어 이동할 때도 있다. 소들은 사람을 못 본 척 부지런히 풀만 뜯는다. 곶자왈생태공유재단이 운영하는 생태체험관, 전통 초가 숙박시설, 야외 공연장 등의 시설도 갖춰져 있다. 가까운 곳에 제주 화산석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제주돌문화공원이 있다. 문의 (064)783-7482.

제주=글·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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