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름값을 잡겠다며 야심차게 추진해온 알뜰주유소 육성계획이 초반부터 삐걱대고 있다. 알뜰주유소에 공급할 기름을 확보하기 위해 정유사들을 상대로 15일 실시한 입찰이 유찰된 것. 정부는 곧바로 재입찰에 나선다는 방침이지만, 뜻대로 될 지는 불투명해 보인다.
지식경제부는 이날 "한국석유공사와 농협이 알뜰주유소에 휘발유와 경유를 공급하기 위해 실시한 공동구매 입찰에서 낙찰자가 나오지 않아 유찰됐다"면서 "긴급공고를 통해 재입찰을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입찰 물량은 휘발유와 경유 내수시장의 5% 가량으로 계약기간은 1년이다.
입찰에는 일찌감치 불참을 선언한 현대오일뱅크를 제외한 SK에너지와 GS칼텍스, 에쓰오일 등 정유 3사가 모두 응찰했지만, 석유공사와 농협이 원하는 공급가격이 나오지 않았다.
당초 정부는 정유사들에게 ▦농협주유소 300곳 ▦자가폴 주유소 50곳 ▦도로공사 소유의 고속도로 휴게소 내 주유소 50곳 등 총 400곳의 알뜰주유소에 공급할 물량을 일반 주유소보다 ℓ당 30~50원 가량 싸게 공급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렇게 공급가를 낮춘 뒤 사은품을 없애고 셀프주유를 통해 비용을 추가로 절감하면, 알뜰주유소의 판매가가 일반 주유소보다 ℓ당 70~100원 싸질 것으로 기대했다.
석유공사와 농협은 조만간 재입찰을 실시할 계획이다. 지경부 관계자는 "재입찰 과정에선 정유사들의 물량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지역별 쿼터제를 실시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이달 중에 공급자를 선정해 내달부터 알뜰주유소에 기름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입찰을 한다 해도 정유사들이 정부나 농협이 원하는 낮은 가격을 제시할 지는 불투명하다. 정유사들 입장에선 알뜰주유소에 기름을 공급할 경우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마진이 줄어드는데다 일반 주유소와의 형평성 논란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알뜰주유소 공급물량 확보를 위해 수출물량을 내수용으로 전환해야 하는 데 따른 부담도 상당하다. "공개입찰이니 굳이 불참할 이유가 없었다"는 한 정유사 관계자의 언급은 입찰에 참여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상황이 이쯤 되자 정부도 다른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중국 일본 등에서 휘발유나 경유를 수입하는 방안이다. 홍석우 지경부 장관 후보자도 이날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재입찰과 함께 해외로부터 들여오는 방안도 대안의 하나"라고 말했다. 이미 석유공사는 몇몇 해외업체와 물밑협상을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유류세나 유통구조는 손대지 않고 정부가 정유사들의 협조만으로 기름값을 낮추려는 발상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유인호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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