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뒤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개정 협상을 추진한다고 밝힌 것에 대한 미국의 반응이 주목된다. 미국은 한국의 FTA 반대 여론과 ISD 재협상 논란에 겉으로 침묵했지만 상황은 면밀히 주시해왔다. 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이 13일(현지시간) 한국의 한미FTA 반대집회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 "지켜보겠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각에선 2008년 쇠고기 파동이 재연하는 것 아닌지 우려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이 대통령의 '한미 FTA 비준 뒤 ISD 개정 협상' 방안이 FTA 재협상 보다 현실적이란 평가를 내릴 것으로 보인다. 한국 국회나 정부가 FTA 반대가 아니라, 비준 뒤 문제 조항의 개정협상을 요구하는 수순을 밟는다면, 미국도 반대할 이유나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앞서 입법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진행해야 하는 FTA 재협상은 불가능하다는 의사를 한국 정부에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 대통령의 FTA 비준 뒤 ISD 협상 카드에 대해서도 한국 여론을 충분히 살핀 뒤 입장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내 논란에 미국이 끼어들면 사태가 회복불능으로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미국 입장은 "한국에서 FTA가 비준, 발효된 뒤 한국 정부가 ISD 개정을 요구해오면 논의할 수 있다"는 원칙론을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이런 미국의 입장은 한미 FTA 규정에 따른 당연한 것이다.
어느 때보다 공고해진 한미동맹을 감안할 때 오바마 행정부가 이 대통령의 한국 내 정치적 입지를 강화시킬 조치나 약속을 미리 공개할 수는 있다. 쇠고기 파동 때 미국은 한국 정부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 재협상에 응한 사례가 있다. 더구나 한미 FTA가 동북아 경제동맹의 중요 사례인데다 오바마 행정부에게 절실한 일자리 창출의 주요 수단이란 점에서 예외성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미국의 선제적 조치는 ISD 문제 조항의 삭제와 같은 논란이 될 내용의 개정 약속보다는, 적극적으로 ISD 개정협상에 응하겠다는 정도의 립 서비스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 연초부터 대선 정국이 본격 시작하는 것도 오바마 행정부가 적극 대응하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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