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23일 영업정지된 6개 저축은행에 대한 압수수색으로 막이 오른 저축은행 비리 수사가 정관계 로비를 조준하며 '2라운드'에 접어들 기세다.
제일저축은행 유동천(71) 회장과 이용준(52) 행장, 파랑새저축은행 손명환(51) 행장 등을 불법대출 및 분식회계 주도 혐의 등으로 지난달 구속 기소한 검찰은 이달 들어서는 토마토저축은행 신현규(59) 회장을 법정에 넘기며 속도를 내고 있다. 또 고양종합터미널 신축사업을 진행하면서 에이스저축은행 등에서 수천억원을 부당대출받은 혐의로 시행사 대표 이모(53)씨도 법정에 넘겼다. 대영, 프라임저축은행 수사도 어느 정도 마무리돼 경영진에 대한 사법처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다.
검찰은 이에 따라 저축은행 대주주의 횡령 위주 수사에서 벗어나 이들의 구명 로비에 초점을 맞춰 수사진용을 재정비하고 있다. 부산저축은행 수사에서 드러났듯이 퇴출 저지 및 수사 무마 로비를 위해 저축은행 측에서 금융감독원이나 국세청, 검찰과 경찰 등에 금품로비를 시도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동천 제일저축은행 회장이 금감원과 국세청 관계자에게 수억원대의 금품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으며, 현직 검사와 수십여 차례 통화한 사실도 확인됐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구명 로비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검찰은 특히 현직 검사의 실명까지 거론되면서 수사팀 분위기가 어수선해지자 직원들에게 함구령을 내렸다. "본격 수사에 착수할 만한 구체적 단서나 혐의를 잡은 것이 없다"고 밝히는 등 파장이 확산되는 것을 경계하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검찰의 설명과는 달리 수사팀은 압수수색 직후부터 로비 단서를 상당부분 축적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팀 관계자는 "수사 초기부터 대주주 불법대출 문제뿐만 아니라 로비 관련 부분도 같이 들여다봤다"며 "다만 수사 효율을 위해 로비 수사는 뒤로 밀어뒀을 뿐"이라고 말했다. 불법대출 등 혐의로 대주주들의 신병을 우선적으로 확보한 후 본격적으로 구명 로비 의혹을 파헤칠 계획을 세웠다는 말이다. 검찰은 지난달 구속돼 수감 중인 유 회장을 수시로 불러 로비 관련 의혹을 집중적으로 캐묻고 있다.
검찰은 저축은행 업계의 산 증인으로 통하는 유 회장의 입을 주목하고 있다. 유 회장은 제일저축은행을 업계 3위 수준의 대형 은행으로 키우는 과정에서 감독기관과 수사기관 등에 거미줄 인맥을 형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유 회장은 창업 후 40년 이상 경영을 책임진 입지전적인 인물로, 호형호제하는 기관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유 회장이 본격적으로 입을 열면 옷 벗을 인사들이 적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토마토저축은행도 구명 로비 시도 의혹을 받고 있다. 신현규 회장은 퇴출설이 한창 나돌던 올해 초 검찰 출신 정치권 인사를 부행장으로 영입해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검찰은 지역구 국회의원 등 정치권 인사와의 친분도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신 회장이 정치인들을 상대로 금품로비를 시도했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영업정지된 저축은행 대부분은 퇴출을 막기 위해 다양한 로비를 시도했다"며 "로비 시도만으로 범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지만 금품 거래가 있었다면 당연히 사법처리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