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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어플루엔자에 감염되다/ (중) SNS·블로그는 허영의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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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어플루엔자에 감염되다/ (중) SNS·블로그는 허영의 시장

입력
2011.11.15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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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품 이용 후기 등 줄줄이… 충동구매 유혹에 빠져 돈 줄줄

서울 신림동에 사는 직장여성 장현숙(37ㆍ가명)씨는 최근 자신의 씀씀이를 되돌아보며 스스로도 깜짝깜짝 놀란다. 그는 지난 1년 사이 각각 500만원대, 300만원대 명품 가방 두 개를 사들였다. 명품은커녕 국내 유명 브랜드 가방을 살 때도 몇 번이고 가격표를 들여다 보던 몇 년 전까지의 소비 습관과 비교하면 딴판인 요즘이다.

장씨가 명품 쇼핑에 맛을 들인 것은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서다. "처음엔 유모차 등 아기 용품을 좀 싸게 구입하려고 블로그를 이용했어요. 그러다 저랑 소득수준은 별반 차이가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온갖 명품을 입에 올리는 '별천지'를 알게 됐죠. 나만 모르고 살았나, 싶은 묘한 경쟁의식이 들었습니다. 스트레스 좀 받다가 결국 충동적으로 샤넬 백을 질렀어요."

나는 과시한다, 고로 존재한다

국내 명품 소비 열풍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하지만, 블로그와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개인의 생각과 생활방식 등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매체가 활성화하면서 대중들은 이를 통해 자신의 소비를 과감히 과시하고, 이는 소비의 연쇄효과를 불러오고 있다.

2009년 미국 럿거스대 연구팀의 분석에 따르면, 트위터 이용자의 80% 가량이 일명 '미포머'(Meformer)다. 영어 'Me'와 'Informer'를 합성한 미포머는 자신이 무엇을 사고 무엇을 먹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등을 시시콜콜 알리는 이들을 지칭한다. 이들의 등장으로 개인의 소비생활은 과거보다 더 빠르고 강력하게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받게 됐고, 그 틈을 타고 어플루엔자 바이러스도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요컨대 소셜미디어가 명품 소비 확산의 고속도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온라인에서 새로운 유행어로 떠오른 '럭셔리 블로거'와 '럭셔리 제너레이션'은 블로그와 명품의 '협력 관계'를 명확히 보여준다. '럭셔리 블로거'는 명품 구매와 이용기, 호사스러운 육아 경험, 해외여행기 등을 끊임없이 올리는 블로거를 가리킨다. 최근 세계 와이너리 탐방기 등을 블로그에 올린 모델 출신의 한 주부는 화려한 생활을 꿈꾸는 네티즌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그녀의 블로그를 방문하는 네티즌은 하루 1만명 안팎이다. '럭셔리 제너레이션'은 일상화된 명품 소비를 통해 정체성을 찾는 대학생 명품족을 지칭하는 신조어다. 이들은 블로그와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명품 정보를 공유하고 물건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블로그에서 명품을 보면 다들 사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 죄책감 없이 나도 지르게 된다. 특히 명품으로 치장한 배우들을 비교해 보여주는 블로그를 보면 정말 나도 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대기업 계열사에 다니는 직장인 한영현(35ㆍ가명)씨의 말이다.

지름신을 부르는 소비의 고속도로

소셜미디어의 강력한 영향력에 주목한 기업들도 발빠른 대응에 나서고 있다. 명품 업체들도 예외가 아니다. 기업들이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마케팅에 적극 나서면서 등장한 용어가 '그라운드스웰'(Groundswell). 원래는 먼 곳의 폭풍으로 생긴 큰 파도를 말하는데, 소셜미디어를 통해 특정 제품의 정보를 얻고 엄청난 파급력을 지닌 입소문을 내는 네티즌의 소비 행태를 일컫는 상징적 표현으로 쓰인다. 기업들은 소셜미디어가 일으킨 유통의 지각변동을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있다. 수많은 팔로워를 보유한 유명 스타가 돈을 받고 트위터 메시지를 통해 특정 회사 제품을 간접 홍보하는 것은 이젠 비밀 아닌 비밀이 됐다.

전문가들은 블로그 등 소셜미디어가 네티즌들에게 특정 상품에 대한 그릇된 신념을 신어줄 수 있고 그 신념이 충동적인 구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른바 '신념편향 효과'(Belief Bias Effect)가 발생하는 것이다. 소셜미디어와 소비 행태에 대한 논문을 준비 중인 홍문기 한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사람들은 누군가 블로그에 특정 물건을 10년간 사용했다고 쓴 글만으로도 신뢰를 갖는다"며 "소셜미디어의 편향적이거나 왜곡된 메시지에 의해 사람들은 비합리적인 결정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 확 달라진 명품에 대한 시각

'갖고 싶지만 부담스런 고가의 제품'에서 '비싸지만 실용적인 제품'으로. 최근 명품과 관련한 블로그 글에서는 명품에 관한 인식의 변화가 뚜렷이 드러난다.

한국일보가 인터넷 분석 회사인 다음소프트에 의뢰해 블로그에서 명품 브랜드 루이뷔통을 언급한 글을 분석한 결과, 명품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은 급격히 줄고 긍정적인 단어의 사용이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2008년 11월1일~2011년 10월31일 N포털사이트의 블로그에 게재된 글들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조사에 따르면 럭셔리란 용어와 관련된 수식어는 '비싸다'를 제외하곤 모두 매우 긍정적인 단어들이었다. '고급스럽다'와 '화려하다', '우아하다'는 표현이 가장 많이 연관됐고, 럭셔리라는 단어도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었다.

명품 브랜드에 대한 언급도 해가 갈수록 늘고 있었다. 2008년 11월1일~2009년10월31일 1,435번이었던 루이뷔통 언급횟수는 2010년 11월1일~2011년 10월31일 4,975번으로 3배 이상으로 뛰었다. 같은 기간 샤넬도 1,381번에서 3,592번으로 급증했다.

명품에 대한 인식도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2008년 11월1일~2009년 10월31일 루이뷔통에 대한 연관 단어들 중 '고가'가 17번째로 많이 언급됐으나 이후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이 기간 루이뷔통과 가장 많이 짝을 이룬 단어는 '다양한'이었다. '화려한'과 '블랙'이 그 뒤를 이었다. 이에 비해 2010년 11월1일~2011년 10월31일 많은 쓰인 수식어는 '실용적' '사랑' '부드러운' 순이었다.

조사 결과 '짝퉁'과 '조잡하다'는 단어는 사라지는 추세를 보였다. 가짜 명품 대신 진품을 사용하는 경향이 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 케이블TV·패션잡지도 명품 홍보 창구역 톡톡

지난해 1월 출시된 프랑스 화장품 브랜드 크리스찬 디올의 안티 에이징 에센스는 케이블TV 덕을 톡톡히 봤다. 이 제품은 한 케이블 채널의 뷰티 정보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지난해 9월 이후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방송 직후 보름 동안 팔린 수량만 1만개. 프로그램에 출연한 뷰티 전문가가 피부 노화를 늦추는 방법의 하나로 이 제품을 추천한 덕이었다.

국내 명품 소비가 급증세를 보이는 주요 배경 중 하나로 미디어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20,30대 여성이 주된 시청층인 케이블TV 채널들에서 명품을 비롯한 패션ㆍ뷰티 정보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부쩍 늘면서 명품의 홍보창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온스타일의 '스타일매거진', 올리브의 '겟 잇 뷰티', 스토리온의 '토크 앤 시티' 등에 등장하는 특정 브랜드의 상품 정보는 즉각적으로 소비 심리를 자극한다. 한 패션 브랜드의 홍보 담당자는 "이런 프로그램들에 제품이 소개되면 바로 제품에 관한 문의 전화가 쇄도해 길게는 한 달간 계속되기도 한다"며 "명품처럼 이미 잘 알려진 브랜드는 신생 브랜드와 달리 광고를 통한 판매 촉진 효과가 높지 않기 때문에 케이블 채널의 라이프스타일 정보 프로그램을 중요한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 패션ㆍ뷰티 업계에서는 이들 프로그램에 자사 제품을 노출시키기 위해 수개월씩 대기하는 것은 물론 제작비를 협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돈다. 케이블 채널보다 대중성은 낮지만 패션잡지의 소비 촉진 효과도 상당하다. 최근에는 패션잡지에 실리는 애드버토리얼, 즉 기사 형식 광고의 비중도 크게 늘었다.

●어플루엔자 (Affluenza)

어플루엔자(Affluenza)=사치병, 소비중독 바이러스. 풍요를 뜻하는 어플루언트(affluent)에 유행성 독감 인플루엔자(influenza)를 더해 만든 합성어. 풍요로워질수록 더 많은 것을 욕망하는 현대인의 탐욕이 만들어낸 질병을 말한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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