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명배우 메릴 스트립(62)이 마가렛 대처(86) 전 영국 총리 역을 맡은 영화 ‘철의 여인(The Iron Lady)’을 두고 영국 우파진영이 단단히 뿔이 났다. 이 영화가 우파의 정신적 지주 대처 전 총리를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치매 환자로 적나라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14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이 영화가 여러 차례 대처 전 총리의 치매 증상을 묘사한 것이 대처 전 총리 가족과 측근들의 신경을 자극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화에서는 첫 장면부터 대처 전 총리가 경호원의 눈을 피해 사저 밖으로 나와 구멍가게에서 우유를 사면서 21세기 물가에 충격을 받는 모습이 등장하고, 그가 치매 때문에 남편의 죽음마저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도 나온다.
영화의 개봉은 내년 1월이지만, 표현의 적절성을 둘러싸고 벌써부터 논란이 일고 있다. 대처 전 총리를 과거도 기억 못 하는 ‘꼬부랑 할머니’로 묘사하는 것이 그의 업적을 폄훼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는 게 비판론자들의 주장이다. 대처 전 총리의 홍보보좌관을 지낸 팀 벨은 “영화가 도대체 뭘 말하고자 하는지 모르겠다”며 “메릴 스트립이나 작가에게 돈을 벌어주는 것 외에는 가치가 없다”고 분노했다. 대처 전 총리의 가족과 친구들 역시 “살아 있는 사람을 영화 소재로 삼는 것은 모욕이며 대처 전 총리는 영화를 보지 않을 것”이라 목소리를 높였다. 영국 현대사의 상징적 존재를 미국 여배우가 연기한다는 것도 불만이다.
그러나 대처 전 총리의 치매는 작가의 상상력이 아닌 확인된 사실이다. 2008년 대처 전 총리의 딸은 “치매와 심장발작 때문에 어머니가 과거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며 “문장을 끝맺거나 가족을 구별하는 데도 애를 먹는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 스트립은 1979년 영국 역사상 첫 여성총리에 올라 11년간 집권하며 강력한 추진력을 과시했던 대처 전 총리의 역을 잘 소화해 통산 17번째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를 것이 확실시된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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