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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퇴임 앞둔 김지형 대법관 "진보적 성향 동의하지만 좌파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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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퇴임 앞둔 김지형 대법관 "진보적 성향 동의하지만 좌파는 아니다"

입력
2011.11.14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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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영향을 받거나 관심을 갖는 사안에 대한 최종 판단을 통해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곳입니다. 사회의 다양한 견해를 반영하는 목소리가 대법원 판결에도 녹아 들어가야 하는 이유지요. 저를 비롯한 몇몇 분들이 재임 중 그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20일로 6년 임기를 마치는 김지형(53ㆍ사법연수원 11기) 대법관은 진보 성향의 소수 의견을 많이 내 이른바 '독수리 5형제'(김영란 이홍훈 김지형 박시환 전수안)로 불렸던 대법관들의 '역할론'을 이렇게 정리했다. 노동법 분야의 권위자로 손꼽히는 김 대법관은 그 중에서도 특히 비서울대(원광대) 출신에다 47세라는 젊은 나이에 발탁돼 대법관 구성 다양화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청년 대법관' 김 대법관이 퇴임 기념 논총에서 묘사한 대법관의 일상을 요약하면 이렇다. 아침 9시 출근, 기록 검토, 12시25분경 구내식당 점심, 기록 검토, 저녁 6시30분~7시 퇴근. "집에서 저녁을 마치면 블랙커피를 마시며 연구보고서를 들여다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자정을 넘어서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잠을 청해도 쉬 잠들지 못합니다. 어떻게 결론을 내리는 것이 옳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그래서 어느 날 묘안을 찾았습니다. 가볍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예능프로그램을 30분 정도 보다 잠드는 것입니다." 6년간의 수도승 같은 생활을 마치고 떠나는 그를 14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내 집무실에서 만났다.

_ 퇴임 소감은.

"부담이 컸던 자리여서 그런지, 우선 안도감이 든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께 제청 이유를 여쭤 봤더니, '40대의 젊은 목소리도 대법원에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더라. 그런 측면에선 어느 정도 기여를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_ 아직 50대 초반이다. 퇴임 후 계획은.

"후배 법조인 양성에 보탬을 줄 수 있을까 해서 모교인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측과 얘기를 진행하고 있다.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활동도 구상 중인데, 노동법과 관련해 변호사로서 공익 활동을 하는 것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_ 법관 생활하는 동안 포기했던 경제적 이익을 만회하고 싶을 법도 한데. 변호사로 한창 일할 나이이기도 하고.

"(웃음) 노후를 걱정할 정도까지는 아니다. 지금까지는 많이 받고 살아왔으니 이제는 돌려줄 수 있는 길이 있으면 좋겠다."

_ 대법관이 쉬는 날에는 아반떼 승용차를 몰고 다녀 화제가 됐다.

"오래되긴 했지만 당장 새 차를 구입할 계획이 없다. 바꾸더라도 중소형차를 계속 타게 될 것 같다. 외부 시선이라는 게 있긴 하지만, 저는 그런 문제에서는 자유로운 편이다."

_'이용훈 사법부'에 대한 평가는.

"여러 공과가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전원합의체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왔다는 점을 가장 큰 변화로 꼽을 수 있다. 전원합의체에서 다뤄지는 사건들은 대체로 법령 해석의 통일 기능 이외에 사회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관심을 갖는 사안들이다. 13명의 대법관이 평의를 하면서 개진한 다양한 의견을 판결문에 넣어주니, 국민들이 비록 소수의견이지만 '나와 생각이 같은 대법관이 있구나' 하는 점에서 희망과 위안을 보는 것 같다."

_ '독수리 5형제'라는 별명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나.

"기본적으로는 대법원 내의 다양한 견해를 한쪽에서 제시하는 역할을 하는 대법관들이라는 의미로,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물론 처음에 그 표현 들었을 때는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웃음)"

_ 진보적 대법관이라는 평가에는 동의하나.

"'진보 대법관'이라는 표현은 안 맞지만, '진보적'이라고는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미국 연방대법관에 대해서도 '진보적-보수적'이라고 하지, '진보-보수'로 부르진 않는다. 심지어 '좌파'라는 말도 하던데, 거기엔 동의하지 않는다. 좌-우 개념과 진보-보수의 개념은 다르다. 기본적으로 사법부는 보수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그나마 덜 보수적인 쪽을 진보, 조금 더 보수적인 쪽을 보수라고 한다면 저는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_ 노동법 분야 전문가로서 기억에 남는 판결은.

"일반 근로자의 출퇴근 중 사고의 업무상 재해 여부를 다룬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는데, 근소한 차이로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는) 종전 판례가 유지돼 참 아쉬웠다. 반대로 현대자동차 파견근로 사건과 관련해 '위법한 파견의 경우에도 2년 이상 파견 형식이 유지됐다면 파견 사업주와의 고용관계가 형성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판례가 제 의견대로 전원합의체에서 만장일치로 확립된 것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_ 비선호 분야였던 노동법 분야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1989년 독일 괴팅겐대학 연수를 갔을 때, 우리나라와 달리 노동법에 상당한 비중을 할애하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국내에서 노동법 사건을 맡았을 때 자료가 부족해 고생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강의와 세미나를 듣게 되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사법연수원 노동법연구회 지도교수를 맡은 것도 그런 인연에서였다."

_ 2009년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 사건 상고심에서 예상을 깨고 다른 진보 성향 대법관들과는 달리 다수 의견에 서는 바람에 무죄가 선고돼 의외라는 의견이 많았다.

"가장 먼저 고려한 것은 형사법의 대원칙인 죄형법정주의, 즉 처벌 가능한 명백한 규정이 없으면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사건의 죄명은 배임죄였는데, 회사에 대한 채무불이행으로 볼 수 있는지가 명백하지 않았다. 만약 삼성이 아니라 일반 회사의 사건이었어도 유죄가 확실한지 자신이 없었다. 다만 가정적인 얘기지만, 이 사건은 '에버랜드에 대한 배임'으로 기소가 됐는데, 이와 달리 에버랜드가 저가 발행한 CB 인수를 포기했던 삼성그룹 계열사들에 대한 배임 공모 쪽으로 기소가 됐다면 처벌 가능성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_ 김영란, 이홍훈에 이어 박시환, 김지형 대법관마저 퇴임하면 대법원이 '우 클릭'할지 모른다는 전망도 있는데.

"엄격히 보면 우리가 반대 목소리를 많이 내고 진보적 입장을 대변했다고 하지만, 대법원의 최종 견해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5명의 퇴임으로 대법원이 변화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소수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퇴임 후에도 이 문제는 계속 기대하면서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될 것 같다."

진행=김영화기자 yaaho@hk.co.kr

정리=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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