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반포동 국립중앙도서관.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컴퓨터와 각종 잡지가 구비돼 있는 1층 정보봉사실은 평일인데도 120석 중 3분의 2가 차 있었다. 특히 도서관은 젊은 학생들의 공간이라는 통념도 이곳에선 깨진다. 좌석을 차지한 사람 중 절반 이상이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들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국립중앙도서관 풍경은 '강남의 탑골공원'을 방불케 한다. 종로 탑골공원처럼 강남권의 은퇴한 노인과 실직자 등이 소일을 하러 모이는 곳이 된 것이다.
노인 이용자가 부쩍 늘어난 것은 2009년 리모델링으로 280여대의 컴퓨터와 각종 CD DVD 등을 갖춘 디지털열람실이 생기면서부터다. 신분증만 있으면 누구나 월요일만 빼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곳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중앙도서관에 따르면 2009년 매달 5,500~5,700명 정도였던 60세 이상 이용자가 2010년에는 6,000~6,300명, 올해는 6,800~7,000명으로 꾸준히 늘었다. 이재선 도서관 국제교류홍보팀장은 "60세 이상 이용자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족보를 확인하러 오는 분, 고서를 보러 오는 분 등 다양하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 팍팍한 생활에 쫓겨 지적 활동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었던 은퇴자들에게는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 됐다. 무역회사에서 일하다 2년 전 은퇴한 박모(74)씨는 "종일 이곳에서 문학 작품도 읽고 대학 때 배웠던 프랑스어도 공부한다"며 '도서관에 나와 규칙적인 생활을 하니 몸 관리도 되고 소양도 쌓을 수 있다"고 말했다. 30여년간 중ㆍ고등학교 미술 교사로 재직했던 김모(65)씨도 "매일 건강 관련 서적, 인문학 서적 등을 읽는다. 죽기 전에 좋은 미술 작품을 남기기 위해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년의 실직자들을 찾는 것도 어렵지 않다. 오후 3시 구내식당에서 혼자 라면을 먹고 있던 이모(53)씨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전전하며 살다가 인터넷 사업을 준비하기 위해 공부하러 왔다"며 "일주일에 5일 정도, 하루 3시간 이상 온라인 마케팅 관련 책을 읽는다"고 말했다.
물론 단순히 말 벗을 찾아 이곳을 들르는 이들도 있다. 더욱이 구내식당 밥값도 3,500~4,000원으로 주변 식당에 비해 저렴해 주머니가 가벼운 노인 이용자들에게 부담이 없다. 이날 300명을 수용하는 구내식당을 채운 사람들 중에도 약 40%가 60대 이상이었다.
드나드는 사람이 다양하다 보니 마찰도 일어난다. 지난달 30일 도서관 이용자끼리 폭행 사건도 발생했다. 이용자와의 시비로 도서관 출입이 제한된 실직자 서모(50)씨는 흉기를 들고 도서관에 들어오려다 출동한 경찰의 팔을 찌르기도 했다. 청원경찰 김상기 대장은 "한 달에 한두 건 정도 폭행 사건이 일어난다. 이에 대비해 경찰 6명이 도서관을 3구역으로 나눠 순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이용자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선 탑골공원보다 한갓진 분위기에 건전하게 신문을 읽고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라며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도서관이 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찾는 공간이 됐다는 건 바람직한 일 아니냐"라고 되물었다.
글ㆍ사진=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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