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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여의도의 '가을 장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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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여의도의 '가을 장마'

입력
2011.11.14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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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다. '3김'(김영삼ㆍ김대중ㆍ김종필)이 정치판을 쥐고 흔들던 시절에도 이렇지는 않았다. 지역정치네, 보스정치네 하며 정치 후진성을 지적 받아도 여야 관계가 지금 같지는 않았다. 정국이 경색될 대로 경색된 상황에서도 여야 창구는 늘 열려 있었고, 여기서 실마리가 마련되곤 했다. 다소 시간은 걸렸지만 말이다.

그런데 지금의 여의도에는 대화가 없고 타협이 없다. 정치권에 정치가 없으니 그 자리엔 불법과 억지, 자기 보신만 남았다. 정치 실종이다.

여야 힘겨루기 속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 문제는 조금도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FTA 처리 전망은 안개 속이다. 신문지로 가려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회의실 폐쇄회로(CC) TV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민생 법안 처리나 예산안 심의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국민 소통을 제1가치로 외치는 곳이 최악의 불통지대가 됐다. "정치가 원래 그런 것"이라고 말할지 몰라도 이건 아니다. 금도를 넘고 있다.

여야 원내대표가 만나 타협을 이끌어내도 당내로 돌아가면 곧바로 공수표가 되는 일이 다반사다. KBS 수신료 인상안 처리와 한ㆍ유럽연합(EU) FTA 비준안 처리 문제가 그랬다.

여야 원내대표가 이끌어낸 한미 FTA 절충안도 당내 강경파에 의해 바로 무효가 됐다. 보다 못한 여야 의원들이 절충안을 만들어 소속 정당에서 동료를 설득하고 있을 정도다.

툭하면 장외로 나가고, 같은 편끼리 패가 갈려 각목 싸움까지 벌이던 구시대 정치만도 못한 상태니 이런 팍팍한 정치 현실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정치권을 새삼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무책임한 양비론을 떠나 현 상황을 냉정하게 되짚어보자는 것이다. 앞장서서 반대하는 야당 강경파들은 한나라당을 향해 "차리리 날치기를 하라"고 말하기도 한다. 여야 합의 처리를 강조하는 것이지만 여당의 단독 처리를 유도하는 건 아닌지 진짜 속내를 잘 모르겠다. 여당이 단독 처리 한다면 야권 입장에서는 대여 강경 투쟁을 벌이는데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다. 야권이 한 몸이 되는 부수적인 효과도 얻게 된다.

여당도 그렇다. 겉으로야 국익을 운운하며 직권상정 카드를 만지작거리지만 당장 내년 총선이 걱정돼 선뜻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일부 의원들은 뚜렷한 해법도 없이 합의 처리 만을 공허하게 주장한다. 자기 선거를 위한 명분 쌓기란 생각이 든다.

이러다 보니 시간만 흐른다. 벌써 수년째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 하기에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

주요 국가 정책의 방향을 놓고 여야가 엇갈릴 수 있다. 시기와 방법을 놓고 부딪칠 수도 있고, 머리를 맞대고 얘기해도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권은 국정의 무한 책임을 진다. 야당과의 타협도, 반대 여론의 설득도, 소신에 대한 평가를 훗날에 맡기는 것 모두가 여당 몫이다. 서둘러 합의하든 아니든 여당의 책임인 것이다. 자기 안위만 염두에 두는 무책임한 여당을 만나는 것만큼 국민적 불행이 없다.

소나기가 내릴 때는 처마 밑에서 기다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하지만 계속 내린다면 비 맞으며 집까지 뛰어갈 수밖에 없다. 집에 가서 "왜 비를 맞고 왔느냐"고 한 소리를 듣더라도 말이다.

여야 정치 계산법이 복잡하게 적용되면서 여의도의 가을 장마가 계속되고 있다. 비가 조금 더 내리면 국가의 미래 농사는 망친다. 시간이 별로 안 남았다.

염영남 정치부 차장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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