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진우
城은 멀다짙은 안개 속날개 잘린 새들이 더듬거리며 벽을 기어내려온다단식광대가 쇠창살에 매달려멍한 눈으로 해 지는 지평선을 보고 있다이불을 둘둘 감고고치 속에서 이제 막 빠져나오는사내의 여윈 손시골의사가 조심스레 죽은 자의 눈꺼풀을 쓸어내린다어느 길모퉁이에선 또 한 사람이 돌멩이에 맞아 개처럼 죽어가고영원히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서성이던 이는마침내 몸을 돌려 비좁은 골목길을 빠져나간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소리친다다시, 처음부터 다시 써!
● 수업시간에 종종 카프카를 읽습니다. 도달할 수 없는 성에 가려는 측량기사 K에 대한 장편()도 좋고 입맛이 없어 굶어 죽어가는 광대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어느 날 이불 속에서 커다란 벌레가 되어버리는 에서는 샐러리맨의 비애가 느껴지기도 하죠. 우리, 그렇잖아요. 아침마다 출근하기 싫어 도시에 폭설이 내리거나 모든 일상이 중지되는 놀라운 사건들을 상상하곤 하지요. 카프카가 어렵다고 불평하는 학생들에게는 열다섯 살부터 지독한 책벌레였다던 그의 편지를 읽어주기도 합니다. "한 권의 책, 그것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와 같아야 한다." 그런 충격적인 일격을 당하면, 이 삶을 처음부터 써 내려갈 수 있을까요? 누군가는 다시 쓸 수 없어서 인생은 소설보다 훨씬 더 어려운 거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다시 쓸 수 있어 삶도 소설처럼 심오하고 아름답다고 믿는 시인에게 저는 한 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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