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에서 열린 한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심사회의에 벌어진 일. 수상작을 놓고 격론을 펼치던 두 외국인 심사위원 중 한 명이 참다 못해 상대방의 얼굴을 똑바로 보며 독설을 날렸다. "네가 영화를 잘 몰라서 그런 것이야." 가뜩이나 냉기가 돌던 회의장은 일순간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모욕을 당한 심사위원이 별 일 아닌 듯 그 상황을 넘겨 심사는 무사히 마무리 되었다. 심사 결과는 험한 말을 던진 심사위원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영화제 심사는 치열한 설전을 연출하기도 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기도 한다. 심사위원들의 성향이 영향을 줄 수도 있고, 어느 작품이 심사 대상이냐도 심사 진행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논리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려 하는 심사위원들의 논박을 지켜보는 재미가 꽤 쏠쏠할 듯하다. 유럽의 한 작은 영화제는 아예 폐막식 무대에서 공개적으로 심사회의를 개최하기도 한다.
국내에선 영화제 심사 과정을 소재로 삼은 단편영화 제작이 추진 중이다. 지난해 열린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의 경쟁부문 심사 진통이 동기가 됐다. 심사위원장이었던 배창호 감독과 심사위원 장률 감독이 수상작 선정을 놓고 의견 대립을 했는데, 심사가 끝난 뒤 장 감독이 자신이 겪은 사연이 좋은 영화 소재가 될 것이라는 제안을 영화제 쪽에 내놓았다고 한다. 아시아나단편영화제가 지원을 약속하면서 영화 제작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장 감독이 쓰고 있는 시나리오는 거의 완성 단계다. 안성기 아시아나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과 배우 강수연, 영화사 씨네2000의 이춘연 대표 등 출연진도 거의 확정됐다. 짧은 영화지만 참여한 영화인의 면면만으로도 세간의 눈길을 끌 만하다. 첫 상영 무대는 내년 10회를 맞이하는 아시아나단편영화제 개막식이 될 듯하다.
연출은 지난해까지 집행위원장으로 부산영화제를 지휘했던 영화계 거물이 맡게 된다. 영화진흥공사 사장과 문화부 차관 등을 지낸 그가 메가폰을 잡은 영화이니 유수의 영화제 진출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섣부른 예단까지 나온다. 그가 최근 시작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트위터에 남긴 자신에 대한 소개 글엔 이런 문구가 있다. '2012년 감독으로 데뷔 예정.' 그는 장 감독의 영화 '이리'와 임권택 감독의 '달빛 길어 올리기' 등에 출연하며 배우로 활동 영역을 넓히더니 연출 이력까지 더하게 됐다. 이만하면 그의 이름을 알 만하지 않을까.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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