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없이 달리다가 멈춰서 뒤돌아보니 철없던 행동이나 자만했던 모습이 보이더군요. 결국엔 고맙다는 마음만 남더라고요."
타블로(31)는 떠들썩한 학력 논란 해프닝을 겪고 난 뒤 이전보다 훨씬 단단해진 듯했다. 비쩍 마른 몸에 얼굴도 핼쑥해졌지만 차분한 말투 속에서 강한 심지가 엿보였다. 타블로는 상처가 치유됐다기보다는 이 일을 겪으며 자신의 생각과 시선이 "변했다"고 말했다.
최근 첫 솔로 앨범 '열꽃'을 발표한 타블로를 10일 오후 서울 합정동 YG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당초 음반에 담은 노래들을 통해 할 말을 다 했다며 인터뷰를 극구 사양했으나, 호평이 쏟아지자 마음을 바꿨단다. "많은 사랑을 받고 있을 땐 늘 반겨주는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했죠. 그렇지만 이번엔 전혀 예측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환영해주고 좋아해주는 게 경이롭고 고마울 뿐입니다."
타블로는 지난해 그의 학력(미 스탠퍼드대 졸업)이 가짜라고 주장한 인터넷 카페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회원들과의 질긴 싸움 끝에 혐의를 벗고 긴 휴식 시간을 가졌다. 가족이 고통을 아물게 했고 새 희망을 안겨줬다고 했다. 아침마다 딸을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하다 떠오른 단상들을 메모해 곡을 썼고, 배우인 아내 강혜정의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 양현석 대표의 조언을 듣다가 YG에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열꽃'이란 앨범 제목도 올해 초 감기로 나흘간 고열에 시달린 딸을 돌보다 영감을 얻었다. 그는 열꽃이 피면 거의 나은 것이라는 말을 듣고 "이거다 싶었다"고 했다. "아픔이 극에 달했을 때 피는 열꽃은 그것이 끝나가는 신호라니 제 음악도 열꽃인 셈이죠."
타블로는 학력 논란에 시달리면서 몇 달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음악을 하고 싶지 않다가도 안 하면 미칠 것 같은" 시간이 반복됐다. '내게 행복할 자격있을까… 이젠 눈물 없이도 운다. 그저 숨 쉬듯이 또 운다.' 첫 곡 '집'을 쓰고 선배가수 이소라에게 피처링을 부탁하면서 본격적인 앨범 제작이 시작됐다.
타블로가 '열꽃'에 담긴 10곡을 모두 작사, 작곡했다. 이 노래들은 1년여 동안 그가 지나온 삶의 기록이기도 하다. 'Airbag'에 가득 담긴 외로움은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치유한다. '고마운 숨'에서 그는 "내 아내와 아이의 눈빛"과 "챙겨야 할 형 동생"에게 고마워하며 "눈물 흘릴 만큼만 웃어 봐도 될까?"라고 묻는다.
'열꽃'은 타블로가 몸담고 있던 에픽하이의 앨범들과 딴판이다. 고독과 단절, 슬픔과 상처의 단어로 가득하다.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는 단조의 선율로 그림자를 짙게 깔고 타블로의 랩은 절망과 자기치유, 희망을 읊는다. "올해 초까지 만든 곡들은 극도로 비대중적이고 우울했어요. '집'이 그나마 대중적이었죠. YG와 접촉이 있고 난 뒤 조금씩 달라졌어요. '고마운 숨'과 'Tomorrow'가 그런 곡들이에요."
인터뷰가 끝날 즈음 '타진요' 얘기를 꺼내자 표정이 밝진 않았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분노와 미움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상처가 치유가 됐느냐는 질문에 내놓은 그의 답은 상실이었다. "치유는 다치기 전 상태로 돌아간다는 건데 제 일부분은 영영 사라진 건지도 몰라요. 다신 안 돌아올 수도 있는데 꼭 나쁜 것 같진 않아요."
'열꽃'은 발매 초 미국과 캐나다의 아이튠즈 힙합 앨범 차트 1위에 오른 데 이어 빌보드 월드 앨범 차트 상위에 오르는 등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그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 더 "행복하다"며 이 앨범이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저보다 외롭고 쓸쓸하고 아픈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를 미워하는 사람들도 가슴 아픈 일을 언젠가 겪게 될지 모르는데 그런 순간이 올 때 위로가 됐으면 해요."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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