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에서 남쪽으로 80km를 떨어진 얼바인시(市). 울창한 숲 사이로 건물 하나가 시야에 들어온다. 감각적으로 꾸며진 건물 외관이 무척 인상적이다. 이 곳은 YF쏘나타의 산실이기도 한 현대차 미국디자인센터.
구본준 미국 디자인센터 연구소장은 "이곳은 극비 중의 극비인 공간"이라며 "일반인은 물론 언론에도 최초 공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동차 회사의 최고 보안 사항은 '다음에 출시할 차의 디자인'이다. 요즘 소비자들이 성능이나 가격보다 디자인을 중시하니 그럴 법하다.
보안상의 이유로 이날 공개된 장소는 모델 스튜디오로 제한됐다. 하지만 이곳은 디자인센터의 심장부로 불린다. 자동차 디자인이 완성되는 초기 단계는 스케치와 랜더링, 즉 머리 속 생각을 평면 그림으로 재현하는 과정이다. 모델 스튜디오는 이 그림을 처음으로 실물화하는 곳이다.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서자 모라(Mora) 머신이라는 기계가 부지런히 진흙(클레이)을 깎으며 자동차 외관을 완성하고 있었다. 이날 시연한 것은 YF쏘나타 실제 크기의 4분의 1로 만들어진 모형. 컴퓨터에 데이터를 입력하면 3시간에 걸쳐 한 개의 모델을 깎고 다듬는다. 안드레 앤더슨 수석 디자이너는 "이 방식은 실제 모델의 느낌을 충분히 낼 수 있고 크기가 작아 디자이너들이 신속하게 아이디어를 표현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앤더슨은 미국 디자인센터의 선임 디자이너로 YF쏘나타 디자인을 주도했으며, 신형 아반떼(엘란트라)와 제네시스 쿠페 등의 디자인에도 참여했다.
다음 과정은 NC가공(Computerized Numerical Control: 수치를 이용한 컴퓨터 가공). 이 과정을 통해 클레이 모델은 실제 크기의 기계로 제작된다. 이날 스튜디오에 전시된 것은 올해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첫 공개돼 화제를 모은 소형 CUV(승용차에 밴을 접목시킨 다목적 차량) 컨셉트카 '커브(CURB, HCD-12)'. 앤더슨은 "이 모델은 가장 최근에 미국 디자인센터에서 디자인한 것으로 앞으로 다양한 품평을 거치겠지만, 미국 젊은이들에게 반응이 좋아 상용화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현대ㆍ기아차는 경기 남양연구소를 중심으로 미국과 유럽을 3대 디자인 거점으로 삼고 있다. 얼바인의 현대차 미국디자인센터는 지난 2003년 로스앤젤레스시 치노에 있던 기술연구소를 확대 개편해 '현대ㆍ기아차 캘리포니아 디자인&테크니컬 센터'로 설립됐으며, 2008년 기아차 디자인 센터가 분리 이전했다. 이들 3대 거점은 서로 긴밀한 협력과 경쟁을 통해 글로벌 신차의 디자인을 개발한다. 앤더슨은 "지역별로 현지에 맞는 전략형 차종 디자인을 개발해 남양연구소에서 최종 평가를 받는 방식"이라며 "공조와 경쟁을 합한 이 같은 구도가 현대차 디자인 경쟁력의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YF쏘나타도 초기 디자인과정부터 미국 디자인센터와 남양 디자인센터 간 경쟁을 통해 탄생했다. 한달 간 양 센터의 디자이너들이 워킹그룹을 구성해 디자인을 완성했으며 최종적으로 두 센터의 결과물을 합친 것이 채택됐다. 때문에 YF쏘나타는 현대차의 새로운 디자인 미학 플루이딕 스컬프쳐(Fluidic Sculpture)를 가장 잘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플루이딕 스컬프쳐는 유연한 역동성을 뜻하며,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선율, 매끄러운 조각과 같은 느낌의 유기적 디자인을 내세운다. 앤더슨은 "미국의 고객들에게 현대차는 품질이나 신뢰성 측면에서 만족할 성과를 이뤄낸 만큼 이젠 현대차만의 새로운 외관을 심어줘야 할 시점"라고 강조했다.
얼바인(미캘리포니아주)=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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