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과 학생들의 출근ㆍ등교 시간이 지난 다음은 할머니, 할아버지 차례다. 오전 9시를 전후한 그 시각, 깔끔한 옷차림에 얕은 화장까지 한 할머니들과, 낡은 양복이지만 단정하게 차려입은 할아버지들이 버스에 올라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주고 받는다. 작은 커피숍이나 식당을 찾아 커피를 마시고 간단한 음식을 먹으며 오전 한때를 보내는 이들은 확실히 여유가 있었다. 동네의 작은 도서관에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어김없이 있다. 돋보기 너머로 책을 읽으면서 공책에는 무엇인가를 적는다. 내려야 할 버스 정류장이 어딘지 몰라 두리번거릴 때, 갈림길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할 때도 어김없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나타나 도와준다. 그들의 속내까지야 모르겠지만, 2000년대 초 영국 소도시의 외곽에 잠시 머물며 한 한정된 경험을 바탕으로 말하자면 그곳의 평범한 노인들은 소박한 여유를 즐기고 남을 배려하며 친절을 베풀려고 했다.
여유 있는 노인, 위축된 젊은이
젊은이들의 삶은 약간 달랐다. 노인들처럼 세련되지도 못하고 여유도 없었다. 공부를 곧잘 했다는 젊은이 중에도 일본에서 일자리를 얻는 게 꿈이라는 친구들이 있었다. 슈퍼마켓에서 캐시어나 청소부로 일하는 젊은 남성도 많았는데,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는 해도, 활동적이고 창의적인 일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쓰러웠다. 여유가 느껴지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초조하고 위축된 젊은이들을 보면서, 아랫세대의 삶이 윗세대의 그것보다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미국의 조사전문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최근 발표한 자료를 보면 이런 생각이 더 명확해진다. 퓨리서치센터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65세 이상의 가장이 있는 가구는 35세 미만 가장이 이끄는 가구보다 자산이 평균 47배 많았다. 돈벌이를 더 오래했으니까 자산이 많은 것은 당연하지만, 같은 내용의 조사를 시작한 1984년 이래 그 격차가 가장 많이 벌어진 것이다. 이쯤 되면 세대 간 양극화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어느덧 두 달이 된 '점령하라' 시위를 두고 유에스에이투데이가 "지금까지 미국은 후세대가 항상 이전 세대보다 좋았고 계층 상승을 이룰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그것이 어려워질지 모른다"고 한 것은 이런 미국의 현실을 반영한 주장이다.
한국이라고 사정이 다르지 않다. 통계청 등이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가구주의 연령이 20대 이하인 가구는 1년 전보다 부채가 34.9%나 증가했다. 전연령층의 평균 증가율 7.3%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꼭 이런 통계가 아니라도 지금 한국의 젊은이는, 여느 나라의 젊은이와 마찬가지로 아슬아슬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짧은 기간에 급격한 성장을 하면서 후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더 잘살고 기회가 많았는데 그것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사회 전체의 부와 생산력은 앞으로도 올라가겠지만 개인이 느끼는 삶의 만족은 이전 세대보다 못하고 상대적 빈곤감도 더 커졌다.
더 이상 순응하지 말아야
한국의 젊은이들이 윗세대가 만든 구조에 맞추기 위해 얼마나 눈물겹게 노력하는지는 다들 알 것이다. 영국의 BBC나 미국의 CNN이 지적한 것처럼 수면권을 박탈당하는 지옥 같은 고교 시절을 겪고 대학에 진학한 뒤 또 다른 고통의 시간을 보낸다. 영어에 매달리고 스펙 쌓기에 열중하며 학점 전쟁을 하면서 기성 체제에 스스로를 적응시킨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이전 세대보다 삶이 나아진다고 할 수 없다. 직업을 가져도 정규직은 바늘구멍이다. 경쟁이 그렇듯, 순응도 끝이 없는 법이어서 아무리 맞추려 해도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주어진 조건에 무조건 맞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깨는 것이다. 그러자면 먼저 당당하게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최근 서울시장 선거에서 젊은 세대가 표출한 민심에 정치권이 깜짝 놀란 것은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박광희 국제부장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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