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부업체 등서 학자금대출 받은 이진우씨
시작은 100만원이었다. 오로지 공부하기 위해 꾼 돈이 2년 새 무려 4,000만원 가까이 불어 가족의 생계를 위협할 줄을 그때는 몰랐다. "숨만 쉬고" 돈을 모아 빚을 갚아나갔지만 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이진우(25ㆍ가명)씨는 2006년 야간대학 공대 입학과 동시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매달 80만원 이상 모아야 한 학기 등록금을 댈 수 있었지만 주말까지 일해도 고작 60만원 남짓이었다. 등록금 스트레스 탓에 그만두고 싶었다. 그러나 "절대 자퇴만은 안 된다"는 어머니 박모(47)씨 말에 마음을 다잡기를 여러 번. 1년 뒤 더는 버티지 못하고 군에 입대했다.
제대 뒤에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당뇨가 심한데다 공사장에서 다리를 다친 아버지(54)와 병원 청소노동자로 일하는 어머니에겐 손을 벌릴 수 없었다. 결국 복학을 앞둔 2009년 12월 등록금이 공대보다 조금 더 싼 인문계로 전과한 뒤 저축은행에서 100만원을 처음 빌렸다. 몇 달 뒤 대부업체 대출까지 포함해 총 300만원을 빌렸다. 매달 15만원 정도의 이자를 내는 조건이었고, 충분히 갚을 수 있다고 여겼다.
오산이었다. 아침을 거르며 새벽부터 일하고, 식비가 아까워 점심마저 굶었지만 빚은 줄지 않았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때마다 30만~40만원씩 대부업체 등을 찾아 돈을 빌렸다. 빚을 갚기 위해 고율로 돈을 빌리는 악순환에 빠진 셈이다.
올해 5월부터 독촉장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지정일까지 입금하지 않으면 법적 조치에 들어간다'는 문구에 금시초문이던 어머니는 화들짝 놀랐다. 소액을 조금씩 빌린 게 4,000만원으로 불어난 상태였다. 박씨는 급한 대로 평생 일하며 부은 보험에서 대출을 받아 2,000만원을 갚고 1,000만원은 정부가 지원하는 바꿔드림론 대출로 해결했다. 그러나 여전히 이자로만 매달 50만원이 나간다. 박씨 월급의 절반이 넘는다.
박씨는 "아무 것도 모르는 학생에게 고리로 배를 불릴 수 있냐고 따졌더니 대부업체 직원이 '아들도 성인'이라며 도리어 큰 소리를 치더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요즘도 대출을 해준다는 전화가 매일 5통씩 온다. 대출을 권하는 사회에서 온 가족이 고통을 당하고, 공부를 하겠다고 아등바등하는데 10% 대출이 대책이라고 내놓는 정부를 보면 기가 막힌다"고 했다.
이씨는 곧 졸업을 한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업을 준비하고 있지만 어머니를 생각하면 죄스러워 고개를 들 수 없다. "고졸 우대나, 반값등록금 얘기가 나오지만 이미 학자금대출로 빚쟁이가 된 전문대 출신에겐 해당 사항이 없으니까요."
그래도 후배들을 생각하면 뭔가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등록금 때문에 다단계에 빠진 후배가 있어요. 연 5%(장학재단) 이자가 싸다고 하는데, 그 심적 부담과 육체적 고통을 당해보지 않으면 몰라요. 반값등록금은 지지부진하고, 학자금대출 문제에는 관심도 없으니, 정부나 정치권은 뭘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씨 말마따나 서울시립대의 반값등록금 외에는 수긍할만한 대안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각자 사정은 다르지만 취재로 만난 20여명의 학자금대출(장학재단 포함) 이용자들은 대부분 이씨처럼 깊은 좌절과 불신에 빠져있었다. 금융당국이 제2금융권 학자금대출 금리(20~40%)를 낮추도록 유도하겠다고 부산을 떨었지만, 취재 결과 일부 대부업체는 여전히 38.69%의 고금리를 대학생에게 제시하고 있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이윤경(한국외대 중국어과 4) 인턴기자
김시정 인턴기자
■ 금감원 "10%대 학자금대출 개발하라" 의욕 넘치지만
"학자금대출 금리도 양극화다. 중간지대를 만들어야 (학생) 부담을 줄일 수 있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이 최근 연 10%대 대학생 전용 신용대출 상품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장학재단(연 4.9%)과 제2금융권(연 20~40%대)이 양분하는 학자금대출의 금리차가 너무 크니, 시중은행이 사회적 공헌 차원에서라도 그 간극을 메우는 신상품 개발에 나서야 한다는 논리였다.
제2금융권과 비교하면 '반값 학자금대출'이라 할만해 언뜻 현실적이고 타당한 대안처럼 보이지만 은행도, 대학생들도 환영하지 않아 상품 출시가 무산될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하다. 고금리에 시달리는 대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금융당국의 '의욕'이 왜 이리 홀대 받는 걸까.
당초 금융당국은 시중은행을 상대로 대출 금리가 낮은 신상품을 출시하거나, 서민전용 대출상품인 '새희망홀씨대출'에 대학생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게 했다. 새희망홀씨는 저소득층에게 연 11~14% 금리로 2,000만원까지 빌려주는 신용대출 상품이지만, 그간 대학생은 해당되지 않았다.
그러나 은행들은 신상품 개발에 난색을 표한다. 대학생은 신용관리가 어렵고 연체비율이 너무 높다는 이유에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소득이나 거래기록이 없고 취업도 힘든 대학생들에게 당국이 할당한 금리로 대출을 하다가 연체 및 부실이 발생하면 은행이 망가질 뿐 아니라 사회적 파장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대학생대출 연체율은 저축은행이 10%, 대부업체는 14.9%(6월 기준)에 달하는 반면, 은행권의 가계대출 연체율은 1%를 밑돈다. 통상 연체율이 1% 이상인 대출상품을 내놓기는 어렵다는 게 은행들의 입장이다. 새희망홀씨대출과의 연계 가능성도 낮다. 연 소득 3,000만원 이하나 신용등급 5~10등급(연 소득 4,000만원 이하)이 대상이어서 대학생을 끼워 넣을 틈이 없다는 것이다.
대학생들은 어차피 비슷한 이자놀음이자 전시행정이라고 비난한다. 전모(21)씨는 "5%든, 10%든, 30%든 이율만 다를 뿐 결과적으로 빚더미에 앉는 것은 같다"고 했다. 이밖에 "깐깐한 은행들이 아무나 대출을 안 해줄 테니 여전히 밀려나는 이들이 생길 것", "장학재단 금리도 버거운 마당에 고작 생색내기냐" 등 날 선 비판이 많았다.
사정이 이런데도 금감원은 권 원장의 의지가 확고해서인지 기대를 접지 않은 눈치다. 금감원 고위관계자는 "시중은행들이 신상품 출시를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걸로 알고 있다.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기다려 보라"고 말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 "저금리 학자금대출 민간에 맡겨선 못풀어"
'대학생 학자금 문제는 민간에 맡겨선 절대 풀 수 없다.'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채산성을 따지는 금융회사를 상대로 소득이 없는 학생들에게 돈을 싸게 빌려주라고 강요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국가 재정을 투입해 등록금을 크게 낮추는 것도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논란거리여서 단시일 내 해결되기는 쉽지 않다. 결국 정부가 저금리 대출을 확대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안인 셈이다.
정부가 저리 학자금을 계속 지원하려면 저렴한 재원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어야 한다. 박연우 중앙대 교수(경영학부)는 "정부 보증 채권 발행에만 의존하는 학자금대출의 확대는 장기적으로 정부 부채의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며 "대출 재원을 기초 자산으로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하는 등 자본시장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 지원 대상을 확대하기 위해선 성적 요건 등 수혜 기준을 대폭 낮출 필요가 있다. 이영 한양대 교수(경제금융학부)는 "일단 학생이 학비부터 받아 공부에 전념하게 한 뒤 성적 요건은 1~2년 뒤 사후적으로 적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학생들의 상환 부담을 줄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초의수 신라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취업을 해서 중위 소득의 80% 정도로 올라올 때까지는 대출금 상환을 유예해줘야 신용불량자가 양산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물론 도덕적 해이는 경계해야 한다. 이재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신용불량에 대해 다소 둔감한 게 현실"이라며 "신용불량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홍보나 대출금 상환 컨설팅 등 대학생 대상 금융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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