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 정가를 움직이는 로비의 세계에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 부지기수다. 파헤칠수록 논란이 될 성격의 로비도 적지 않다. 그런 불편한 진실들이 매년 5월과 11월에 일부 공개된다. 이명박 대통령의 방미 때 필요한 연설문 초안을 컨설팅 회사에 자문해 논란이 된 것도 같은 경우다. 외국을 위해 일한 미국 로비업체들은 그 내역을 법무부에 신고하는데 1938년 나치가 한 로비를 추적하기 위해 마련한 외국로비공개법(FARA) 규정에 따른 것이어서 적당히 넘어가기가 어렵다.
수긍하기 어려운 로비 내역
FARA 신고 내역을 보면 한국 기관의 로비 실태를 전체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2009년 보고를 보면, 12개 한국 기관이 로비업체를 통해 미국의 의회, 싱크탱크 등과 접촉했는데 그 만남을 주선한 로비업체 중에는 로비조직이라 하기에 민망한 곳도 적지 않다. 그 중 한국의 K기관이 로비스트를 통해 만난 인사에는 미국인이 아닌 한국의 전직 대통령, 전ㆍ현직 장관, 외교관, 언론인이 포함돼 있다. 한국 기관이 미국에서 한국인을 만나는데 미국 로비스트를 썼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는 상상력을 동원해야 알 것 같다. 로비업체 리빙스턴그룹은 AK캐피탈이란 조금은 생소한 한국 기업과 2만달러의 계약을 한 뒤 김관진 현 국방장관이 2009년 5월 28일부터 7월 16일 사이에 미국 의원들을 25회 만나도록 주선하기도 했다. 당시 군을 떠나 있던 김 장관이 왜 민간기업을 통해 미국 의회 인사들을 접촉했는지는 신고내역에 들어 있지 않다.
논란이 된 이 대통령 연설문 초안 의뢰와 유사한 사례도 FARA 신고 기록에서 발견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미국을 방문할 때 미 컨설팅 회사와 대통령의 주요 행사 보도자료, 연설문 검토ㆍ교정 서비스 계약을 했다. 뉴욕타임스 같은 주류 언론에 전문가의 해설기사를 기고토록 하고 게재될 경우 필자들에게 500달러를 지급한다는 조항도 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국빈방문 할 때나, 그보다 3년 전 김영삼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할 때 역시 미 업체에서 동일한 컨설팅을 받았다.
이런 문제를 논란 거리로 삼기에 부적절할 수 있지만, 기왕 논란을 시작했다면 로비 수준, 자금집행의 투명성까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대미 로비 규모가 갈수록 확대되는 지금이 이런 문제를 점검할 적절한 시점이기도 하다. 국민의 정부 때 51만달러에 불과했던 로비 자금이, 참여정부 이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위해 물량 로비를 펼치면서 과거와 비교가 어려울 만큼 증가했다. 2006년부터 5년간 사용한 로비와 홍보비용이 800만달러를 넘어섰다. 물론 다른 나라와 비교해 많다고만 할 수는 없다. 2009년만 놓고 볼 때 조세피난처로 유명한 케이먼군도는 780만달러, 아랍에미리트(UAE)는 538만달러, 콩고공화국은 394만달러를 로비 자금으로 썼고 인구 200만명의 아프리카 남단 레소트 왕국도 20만달러를 사용했다.
논란 피하려면 공개해야
하지만 국민 세금으로 충당되는 막대한 자금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집행되고, 성과를 내는지 여부를 국민도 알 권리가 있다. 불편한 진실이 담긴 로비 내역이 미국에서 먼저 공개된 뒤 한국에 폭로 되고 논란이 되는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정부나 기관이 먼저 공개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야 외교와 현안 해결을 위한 워싱턴 방식인 로비에 색안경을 들이대지 않게 된다.
이태규 워싱턴 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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