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 모 경찰서 수사과에서 근무했던 전직 경찰관 이모(54)씨. 2~3년 전 금품수수 비리로 퇴직한 이씨는 영등포구 S병원 장례식장을 인수,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하지만 벌이가 시원찮았다. 이씨가 운영한 장례식장은 빈소 5개와 시신 12구를 안치할 수 있는 규모였지만 파리만 날렸다. 고심 끝에 이씨는 자신의 경력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날 이후 관내 지구대 회식에 자주 참여하며 친분을 쌓았다. 변사 사건이 발생하면 지구대 경찰관이 현장에 먼저 출동해 시신을 안치할 장례식장을 택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 명의로 휴대전화 10여대를 개통, 경찰관 11명과 소방관 2명에게 공짜로 줬고 이들은 119 위급상황이나 변사사건 위치정보를 이씨에게 전화나 문자메시지로 통보했다. 이러니 시신을 수습하는 현장에는 언제나 이씨 업체의 운구차가 가장 먼저 도착했다.
한산하던 S병원 장례식장이 호황을 맞자 주변 장례업체들의 의심을 사기 시작했다. 한 달에 장례를 10여 차례밖에 못 치렀던 곳이 많게는 60차례 했으니 그럴 만했다.
이씨의 그물망식 정보선점과 뒷거래는 한 경쟁업체의 신고로 시작된 검찰 수사로 덜미가 잡혔다.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부장 전형근)는 13일 이씨와 동업자 김모(43)씨를 뇌물공여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이들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H상조업체 팀장 김모(43)씨 등 상조업체 및 요양병원 관계자 8명을 불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변사정보를 제공한 경찰관 7명에 대해서는 개별적으로 받은 금품수수 금액이 크지 않아 소속 기관에 비위사실만 통보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씨는 2009년부터 영등포 구로 일대에서 경찰관, 상조회사 팀장, 병원 원무과장 등으로부터 사망자 정보를 받는 대가로 2년6개월여간 250여명에게 870차례에 걸쳐 1억9,000여만원을 건넨 혐의다.
검찰 수사 결과 S병원의 시신 1구당 평균 장례비용은 430만원(성인 유족 4인 기준)으로 이 가운데 22%인 95만원이 이씨가 주고받은 리베이트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시신 유치 대가로 경찰 등에게 평균 35만원을 건넸다. 반면 이씨는 영구차 대여업자, 유골함 납품업자, 상복대여업자, 조화(弔花)납품업자, 영정사진 촬영업자에게 유족을 소개하는 대가로 시신 1구당 총 60만원의 리베이트를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관계자는 "시신 유치부터 유골함 구입에 이르기까지 장례 절차 전 과정에 리베이트를 주고 받는 관행이 확인됐다"며 "이 리베이트 비용은 불의의 변고로 경황이 없는 유족에게 전가됐다"고 말했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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