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최장수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마지막은 쓸쓸했다. 17년의 정치경력 중 3회에 걸쳐 10년 동안 총리를 지낸 그는 온갖 추문과 비리의혹을 몰고 다니다 국민의 야유 속에 12일(현지시간) 총리직을 내놓았다. 수천명의 시민이 “이탈리아에 봄이 왔다”며 총리의 사임을 축하하면서 수도 로마는 축제의 장이 됐다.
베를루스코니는 이날 하원에서 연금개혁과 일부 국유재산 매각 등의 내용을 담은 경제안정화 방안이 찬성 380표, 반대 26표, 기권 2표의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된 직후 조르지오 나폴리타노 대통령에게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마지막 내각 회의를 마치고 대통령을 만나러 떠나는 베를루스코니에게 시민들은 “어릿광대!” “집에 가라”고 야유를 퍼부었다. 베를루스코니는 기자들에게 “굴욕적이다”고 심정을 털어놓았다고 AFP통신은 보도했다.
베를루스코니의 사임 소식이 전해지자 로마는 그야말로 축제의 장으로 변했다. 대통령궁 밖의 시민 수천명은 추운 날씨 속에서도 샴페인을 터뜨리고 거리에서 춤을 추며 기뻐했다. 달리는 차와 오토바이는 축하의 뜻에서 경적을 울렸다. 헨델의 ‘메시아’ 중 ‘할렐루야’가 거리에 울려 퍼졌다. 한 남자는 “안녕!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마!”라고 소리쳤으며 또 다른 시민은 “이탈리아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를루스코니는 군중을 피하기 위해 옆 문을 통해 대통령 궁을 빠져나갔다.
야당도 일제히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가치당의 마시모 도나디 원내대표는 “오늘이 이탈리아에 새 봄의 시작이 되는 날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제1야당인 민주당 소속 다리오 프란체시니 의원도 “이탈리아 정치 역사의 길고도 고통스러운 장이 막을 내렸다”고 강조했다.
나폴리타노 대통령은 베를루스코니 사임 다음날인 13일 각 정파 대표들을 만나 새 내각 구성을 논의했다. 투자자들이 시장이 열리는 14일 이전에 새 정부 구성을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이탈리아에 조기 총선 대신 과도정부의 조기 수립을 촉구했다.
베를루스코니의 뒤를 이을 것으로 예상되는 인물은 유럽연합(EU) 경쟁담당 집행위원으로 잘 알려진 마리오 몬티. 그는 12일 베를루스코니,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등과 회담하고 지지를 얻어냈다. 하지만 그가 총리가 되더라도 과제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앞날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1조9,000억유로에 달하는 정부 부채를 줄이고 국가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성장동력을 이끌어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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