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공주의 공산성(사적 제12호)은 백제의 웅진시대(476~538) 중심이다. 그 뒤 사비(부여)로 천도한 백제가 660년 나당연합군에 패해 멸망할 때 의자왕이 붙잡힌 곳이 공산성이다. 공산성으로 피해 있던 그를 백제 장수가 적군에 넘겼다.
이 공산성에서 지난달 옻칠한 가죽갑옷이 나온 데 이어 이달 초 역시 가죽에 옻칠한 말갑옷과 손잡이를 금도금한 장식칼 등 의미심장한 유물이 나와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모두 공산성 내 성안마을의 저수시설에서 나왔다. 한국 고대 갑옷 중 가죽갑옷이 실물로 확인되기는 처음인데다 매우 고급스럽고 화려해서 흥미를 자아내고 있다. 붉은 글씨로 쓰인 명문이 뚜렷하게 남아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말갑옷과 장식칼은 이 갑옷 아래 층에서 나왔다. 사람 갑옷과 말갑옷이 같은 소재, 같은 방식으로 제작되어 같은 곳에 묻힌 것은 한 세트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 유물들은 백제 것일까. 그리고 왜 거기에 묻히게 됐을까.
이 유물들은 공주대박물관이 발굴해 현재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보존처리 중이다. 유물 분석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이런저런 판단을 내리기 힘들지만, 수수께끼를 풀 중요한 열쇠 중 하나는 명문이다. 중국 당 태종의 연호인 '정관 19년'을 포함해 20여자가 확인됐다. 갑옷 제작 시기로 보이는 '정관 19년'은 백제가 멸망하기 15년 전인 서기 645년,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 재위 5년이다. 정관 19년이 갑옷 제작 시기라면 묻힌 것은 그 뒤일 것이고, 때는 백제가 멸망한 660년 전후다. 그때 공산성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한상 대전대 교수는 백제 멸망 직후인 665년 '취리산 회맹'과 비슷한 특별한 의식이 공산성에서 벌어진 게 아닐까 상상한다. 취리산 회맹은 백제 멸망 후 의자왕의 아들 부여 융과 신라 문무왕이 공산성 인근 취리산에서 만나 화친을 맹세한 것으로, 백마를 죽여 그 피를 입술에 발라 다짐을 했다고 한다. 백제 멸망 후 공산성에 웅진도독부를 설치한 당은 부여 융을 웅진도독부의 허수아비 왕으로 세워 취리산 회맹을 주선했다. 이 교수는 말갑옷을 묻고 그 위에 사람 갑옷을 묻은 공산성 유물의 출토 상황에서 취리산 회맹을 떠올린 것이다.
일부 학자는 백제가 중국 연호를 쓴 예가 없음을 들어 중국 갑옷일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도학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는 명문 중 '李○銀○'의 '李○銀'을 사람 이름이라고 보고, 백제에는 '오얏 이(李)'씨 성이 없다며 당나라 장수 '이조은'일 것으로 추론한다. 하지만 공주대박물관 이남석 관장은 성급한 추론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20여자가 하나의 문장으로 길게 이어진 명문을 아직 해독하지 못했기 때문에 '李○銀'이 사람 이름인지 알 길이 없고, 백제 법왕 때 '오얏 이' 성이 나온다고 지적한다.
이 갑옷이 중국 것일지도 모른다는 추론은, 전설의 갑옷으로 알려진 명광개(明光鎧) 이야기로 이어진다. 명광개는 '번쩍번쩍 빛나는 갑옷'이라는 뜻으로, 등 중국 역사서와 등에 나온다. 당나라가 고구려와 전투를 해서 명광개 1만 벌을 얻었다, 백제가 당에 명광개를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명광개의 찬란한 금빛은 황칠과 관계가 있다. 황칠은 황철나무 수액으로, 옻칠과는 성분이 전혀 다르다. 당은 백제의 황칠을 몹시 탐냈다.
이남석 관장은 "이번에 나온 갑옷은 옻칠 고유의 짙은 밤색"이라며 황칠이 아니라고 말한다. 또 "명광개는 가슴에 둥근 장식이 달린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번 것은 그 모양이 아니어서 명광개로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당나라 갑옷은 철갑옷이 주류이고 가죽갑옷은 지위가 낮은 사람이 입었다"며 "이번 옻칠 가죽갑옷은 매우 고급스런 것이고 동아시아 최고 수준에 이르렀던 백제 칠공예의 우수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백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말갑옷과 함께 나온 장식칼도 중요한 열쇠다. 사진으로 이 칼을 살펴본 이한상 대전대 교수는 "손잡이 머리가 둥글고 금도금이 된 장식칼은 중국에는 없고 백제와 신라, 일본에서 유행한 것"이라며 "신라에는 이런 칼이 5, 6 세기 것만 있고 7세기 이후는 없는 것으로 보아 백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건 아무 것도 없다. 이번에 출토된 갑옷의 비늘 모양 조각들처럼 흩어진 역사의 편린을, 유물과 기록을 대조해가며 수수께끼를 푸는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