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음식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하나 있다. 모처럼의 온 가족 외식자리, 부모와 자녀들이 한 자리에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바쁜 일상 탓에 못한 대화를 나누는 흐뭇한 모습을 상상하지만 그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아이들은 아빠와 엄마와의 대화보다 휴대전화나 게임기에 눈길을 주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애달픈 아빠와 엄마는 휴대전화나 게임을 그만하라고 하소연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만 확인하곤 한다. 이처럼 현대문명의 이기인 휴대전화나 게임기가 그 편리함과 흥미, 정보성을 무기로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게임 중독 시대의 그늘
우리나라의 PC 보급률과 인터넷 사용자수는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고 있다. 또한 휴대전화 가입자가 4,800만명이 넘고, 그 중 청소년 가입자가 750만 명이 넘는다고 하니 대한민국 국민과 학생들이 거의 휴대전화 소지자라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다.
휴대용 게임기도 아이들 생일, 졸업, 어린이날 선물로 많이 보급되어 있다. 어찌 보면 글로벌 시대와 연간 9조원이 넘는 시장규모를 자랑하는 게임 산업에 걸맞은 수치와 성과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화려함 뒤에 나타나는 부작용이 더 이상 간과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점이다.
최근 서울시가 발표한 '2009 청소년건강행태온라인조사' 및 '2009 서울서베이' 자료에 따르면, 만 15~18세 청소년의 80.6%는 매일 인터넷을 사용하고, 하루 평균 이용시간은 1.65시간, 가장 많이 이용하는 콘텐츠는 음악(65%)과 게임(62.7%)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서울 중ㆍ고교생의 주중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6.3시간으로 조사됐다. 학업에 지치고 게임에 매몰되어 있는 우리 청소년의 실상을 그대로 나타내는 조사결과라 안타까울 뿐이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4월 그 동안 일부 게임 산업에 미칠 수 있는 부작용과 실효성 논란을 빚었던 '셧다운제'(16세미만 청소년들의 자정~오전6시 인터넷 게임 접속 제한)가 국회 본회의를 통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러한 셧다운제를 놓고 찬반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 등 대다수 청소년 및 학부모단체와 교원단체는 청소년 게임중독 예방 및 방지, 수면권과 건강권 보호 차원에서 환영하는 반면, 일부 청소년 및 학부모단체에서는 청소년 인권에 대한 몰지각한 태도이며 청소년의 문화적 자기결정권을 박탈하고, 물리적으로 차단하는 온라인 통금제라며 반대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게임문화 사업도 살리면서 성인의 두 배가 넘는 12.4%에 달하는 청소년 인터넷 중독을 해소해야 하는 과제를 갖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산업의 진흥이 중요하다고 해도 청소년들이 밤샘게임으로 인해 건강을 해치고, 수업결손이 생기며 가정불화까지 이어지는 사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될 것이다. 더불어 실효성을 담보하는 구체적인 보완책도 서둘러야 한다. 부모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한 편법 접속행위에 대한 대책, 부모의 철저한 관리와 지도 또한 필수요소다.
정부와 관련 업체들이 나서야
2007 게임백서에 따르면 집에서 게임 이용 시 부모에게 제약을 받지 않는 비율이 42%가 넘는다는 점에서 부모의 인식변화와 노력이 전제되어야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업체의 불만과 경쟁력 저하 우려는 건전한 게임문화 정착과 더불어 산업 활성화를 위한 진흥책 등 보완작업을 통해 해소해 나가야 한다.
한국교총이 지난 3월 전국 초중고 교원 30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교원 10명중 8명이 "학생 PC 및 휴대전화 게임으로 인한 수업결손을 경험한 바 있고, 지도학생중 절반 이상이 게임중독으로 상담이나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향후 셧다운제가 우리 사회에 제대로 정착될 수 있도록 정부 부처와 게임사들은 적극 노력해주길 바란다.
안양옥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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