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공화당 대선 경선 주자 릭 페리 텍사스 주지사가 토론회 징크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9일 미시건주에서 CNBC 방송 주최로 열린 6번째 토론회. 두 시간째로 접어들 무렵 페리가 “대통령이 되면 연방 부처 3개를 없애 작은 정부를 구현하겠다”는 새 공약을 공개했다. 이어 그는 “상무부, 교육부, 그리고 세번째가…”라며 손가락을 꼽다가 갑자기 여기저기 살피고 준비한 노트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나머지 한 부처를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 그가 기억을 되살리려 안간힘을 쓰는 동안 토론회는 불편한 정적에 빠졌다. 침묵이 계속되자 참다 못한 다른 후보들이 “혹시 이런 부서 아니냐”며 거들었으나, 페리의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다. 사회자가 “세번째 부처를 기억할 수 있느냐”고 묻자 페리는 “세번째가…”라고 더듬거린 뒤 “(기억) 못하겠다”고 결국 포기했다. 페리는 자괴감에 빠진 듯 “미안하다, 아이고!”라며 말문을 닫았다. 페리가 기억 못한 세번째 부처는 에너지부였다. 에너지부를 기억하려 53초 동안 허둥댄 페리 모습은 미 전역에 생중계 됐다.
미 언론은 이를 브레인 프리즈(brain freeze: 찬 음식을 먹고 머리가 아프고 어질어질한 현상)라 부르며 “대통령 선거 사상 가장 불편한 순간이었다”고 평했다. 페리에게는 지지율 추락의 결정판이 될 것이란 분석이 쏟아졌다. 토론회 뒤 페리는 “보수의 원칙까지 잊어버리진 않았다”고 해명했다.
불똥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에게까지 튀었다. 부시가 페리처럼 TV 토론을 거쳤다면 과연 대통령에 당선됐겠느냐는 것이다. 제2의 부시로 불린 페리는 8월 대선 출마선언 당시 지지율 1위였으나, 경선 첫 관문인 토론회를 거칠수록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