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정치야!"
세계 8위, 유럽 3위의 경제대국 이탈리아가 수렁에서 헤어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8일(현지시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사의 표명에도 불구, 시장은 냉혹한 반응을 보였다. 베를루스코니 불가론을 외치던 유럽연합(EU)의 요구를 받아들였는데, 시장은 왜 과민반응을 하는 걸까.
전문가들은 이탈리아 정치권 자체에 대한 의구심이 신뢰 하락을 부채질했다고 말한다.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은 10일 "누가 베를루스코니의 후임이 됐건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이탈리아 경제는 앞서 구제금융을 받은 그리스나 포르투갈에 비해 기초체력이 튼튼한 편이다. 국가채무의 절대 규모(1조9,000억유로)는 크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수준은 4.6%로 유로존 평균(6.5%)보다 낮다. 게다가 이탈리아는 1992년과 95년 경제 위기를 슬기롭게 넘긴 저력이 있다. 정치권이 EU와 합의한 경제회생안을 제대로 수행한다면 얼마든 자력갱생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춘 셈이다.
문제의 1차적 원인은 베를루스코니 총리에 있다. 베를루스코니는 9일 일간 라스탐파와 인터뷰에서 "이달 말까지 사임 절차를 끝내고 다음 선거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계 은퇴 의사를 비쳤다. 그는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가 정부(情婦) 페티치 클라레타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한 구절까지 인용하며 사퇴를 기정사실화했다. 하지만 베를루스코니는 "경제개혁 조치가 의회를 통과한다면"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HIS 글로벌인사이트의 애널리스트인 장 랜돌프는 "책략에 탁월한 베를루스코니가 실제로 권좌를 내려놓기 전까지 그의 발언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이탈리아 정치권의 고질적 병폐다. 이탈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베를루스코니가 첫 총리에 당선된 1994년까지 무려 50차례나 정권이 바뀌었다. 1년 이상 살아남은 정부가 드물다. 정치권의 분파주의 구태는 이번에도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 베를루스코니는 후계자 안젤리노 알파노 집권 자유국민당 사무총장이 차기 총리에 임명되지 않을 경우 거국내각 구성을 거부하고 차라리 조기 총선을 치르자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슈피겔은 "조기 총선이 내년 2월 실시되는 것을 감안하면 그만큼 정치적 불확실성은 가중된다"며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의 규모를 늘려가며 이탈리아를 도와주려는 유로존의 노력을 수포로 돌리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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