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바이러스를 잡는 소프트웨어를 통칭하는 '백신'이란 용어는 사실 제품명이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1988년 혼자 개발해 무료 배포한 '백신(V)1'에서 유래했다. 컴퓨터 바이러스에 대한 개념조차 생소했던 그 시절 그가 개발한 V1은 컴퓨터 안전 확보에 크게 기여를 했고, 이후 V2 V3로 거듭나며 IBM의 PC처럼 백신이란 제품명을 자연스럽게 보통 명사로 만들었다.
'안철수신드롬'의 확산과, 이에 맞물려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에서 정부지원예산 삭감 논란까지 야기했던 안철수연구소는 이렇게 출발했다. 안 원장은 2005년3월 이후 일상 경영에서 손을 떼고 대주주(지분 37% 보유) 자격으로 이사회 의장만 맡고 있다.
안철수연구소 관계자는 "컴퓨터바이러스나 악성코드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이유로 이렇게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것 자체가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실제로 안철수연구소는 국회 지경위에서 정부지원예산 14억원이 삭감됐다가 번복되는 곡절을 겪었고, 지경부 산하 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으로부터 특별평가까지 받게 됐다. 9월 정기평가를 통과했는데도 두 달도 못돼 또 다시 특별평가를 받게 된 것. 지경부 관계자는 "정치권(무소속 강용석 의원)에서 계속 문제를 제기해 사실상 등 떠밀려 특별점검을 하게 됐다"며 "정치적 논란 때문에 평가 결과를 공개하기로 했으며 11일 중에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안철수연구소의 경쟁력은 과연 어느 수준일까. 신드롬의 주인공 '안철수'부분을 빼고 볼 때, 객관적으로 컴퓨터백신 연구기관로서 정부지원을 받을 만큼 연구개발능력과 기술력은 보유한 것일까.
이 부분과 관련해 컴퓨터보안 전문가들의 입장은 한결같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의 이동근 침해사고대응팀장은 "안철수연구소가 아니었으면 지금 국내 보안산업은 없었을 것"이라며 "안철수연구소의 보안기술력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업계에 따르면 안철수연구소의 국내 백신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현재 58%에 달해 2위 하우리(15.9%), 3위 러시아의 카스퍼스키(7.3%)를 압도하고 있다. 지난해 7.7 디도스 대란이나 올해 3.4 디도스 사태 때도 발 빠른 분석을 통해 정부에 추적단서를 제공했고,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한 백신을 무료 배포했다. 그만큼 정부나 업계에서는 안철수연구소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이다.
때문에 정부가 이 연구소에 예산을 지원하는 건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지경부는 지난해 월드베스트소프트웨어(WBS) 지원사업의 하나로 '모바일 악성코드 탐지 및 방어기술 솔루션 개발'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안철수연구소를 주관 사업자로 선정, 두 차례에 걸쳐 총 51억원을 지원했다. 추가로 올해 10월부터 내년 6월까지 3차 예산인 14억원을 지원키로 되어 있었는데, 바로 이 부분이 국회에서 삭감논란이 됐던 것이다.
이 기술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등 휴대기기에서 악성코드 또는 해킹 위험을 사전에 탐지해 막아주는 세계 최초의 모바일 백신이다. 안철수연구소 관계자는 "2013년3월에 제품을 내놓으려면 한창 바쁜 상황인데 불과 두 달 전 받은 평가를 다시 받게 됐다"면서 "왜 우리 연구소가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서야 하는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번에 강 의원이 문제 삼은 것은 안철수연구소 백신의 바이러스 탐지능력이 떨어진다는 것. 그러나 KISA 관계자는 "과거에는 얼마나 많은 바이러스를 찾아내서 얼마나 빨리 치료하느냐가 평가 기준이었지만 엄청난 숫자의 악성코드가 쏟아져 나오는 요즘은 의미가 없다. 적어도 국내 악성코드에 대해선 안철수연구소의 진단율이 낮다고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안철수연구소가 '우물안 개구리'라는 점을 지적한다. 시만텍이나 맥아피 등 세계적 보안업체들이 전 세계에 지사를 두고 신종 악성코드를 수집해 빠르게 대응하는데 비해 안철수연구소는 오로지 국내에서만 머물고 있다는 것. 하지만 이것은 기술력이 아닌 기업규모의 문제이며, 이런 식으로 예산을 깎는다면 해외진출 등은 더욱 어려워진다는 지적이다. 안철수연구소측은 "해외사업이 취약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내년부터 미국 월마트에서 백신제품을 판매하는 등 앞으로 해외진출도 늘려나갈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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