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이 신뢰해 줘서 고맙고 땅을 밟게 해 줘서 고맙습니다."
10일 오후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조치에 맞서 조선소 내 35m 높이의 고공 크레인에서 농성을 벌여왔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마침내 지상으로 내려왔다. 지난 1월6일 크레인에 올라간 지 309일만이다. 만면에는 승리의 기쁨이 가득했다.
이날 오전부터 부산 영도구 봉래동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는 술렁이는 분위기였다. 노사가 하루 전 '정리해고자 94명 1년 내 재취업' 등을 골자로 하는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고, 노조 총회만 통과하면 지난했던 대립이 정리될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김 위원이 이제 크레인에서 내려오는 데 대한 안도감이 컸다.
쌀쌀한 바닷바람이 부는 가운데 오후 1시30분 노동가가 울리자 조합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노조 집행부는 총회 시작 후 만장일치로 합의안을 통과시켜 달라고 제안했고, 조합원들은 박수로서 이를 수용했다.
잠정 합의안이 통과되자 노조원들은 김 위원이 머물고 있던 85호 크레인 앞으로 이동했다. 김 위원은 도르래를 이용해 고공 농성의 흔적인 옷가지와 잡화 등이 담긴 봉지 5개를 먼저 내려 보냈다.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던 김 위원이 크레인 중간에서 얼굴을 보이며 손을 흔들자 노조원들은 "욕봤다(고생했다는 경상도식 표현) 김진숙"을 외치며 환호했다.
김 위원은 '철의 노동자'를 부르는 노조원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오후 3시20분 지상에 내려왔다. 김 위원은 땅에 닿자마자 "사람을 309일 만에 보네"라고 농담을 던졌다.
김 위원은 300일 넘게 크레인에서 홀로 투쟁했던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환한 웃음을 지었다. 김 위원이 본관 건물 앞에서 "난 살아서 내려 올 줄 알았다. 여러분에 대한 믿음과 조합원에 대한 믿음을 한시도 안 버렸다"고 말하자 노조원과 지지 시민 등의 박수 갈채가 쏟아졌다.
김 위원의 투쟁을 지원해 온 노동열사 고 전태일씨의 동생 전태삼씨는 "기쁘고 좋은 날로 어머니(고 이소선 여사)의 소원이 오늘 이 자리에서 이뤄졌다. 노동자도 인간인데 인간답게 살아보자"고 감회를 밝혔다.
김 위원은 21살 때 대한조선공사(옛 한진중공업)에서 용접공으로 일을 시작했다. 입사 5년 만인 1986년 '명령 불복종'을 이유로 해고됐고 20년 넘게 복직 투쟁을 벌였다. 동료들이 회사로 돌아갔을 때도 김씨만 복직 대상에서 제외됐다. 민주노총 부산본부에서 활동하던 김 위원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가 논란이 되자 지난 1월 크레인에 올라가 장기투쟁을 하면서도 정리해고 철회의 끈을 놓지 않았다. 크레인 생활 도중 52번째 생일을 맞기도 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김 위원은 노조원들에 싸여 구급차로 이동한 뒤 동아대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B형간염 소견이 나온 김 위원은 입원했고 체포영장을 발부 받은 경찰은 김 위원에 대한 조사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부산=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손현성기자 hshs@hk.co.kr
채지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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