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연합회를 비롯한 금융협회장들이 9일 공동 명의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조속한 국회 비준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경제단체장들이 성명을 낸 직후였다.
대충 모양새를 보니 금융협회들이 성명을 내게 된 이유는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한 금융협회 관계자는 "굳이 말 안 해도 아는 것 아니냐"고 했다. 정부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웠다는 뜻이다.
공공기관도 아닌 민간 금융회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금융협회들이 왜 정부 등에 떠밀려 이런 성명을 냈느냐고 딴죽 걸진 않겠다. 정부가 금융회사들을 순치시키기 위해 금융협회장 자리에는 대부분 정부 관료 출신이 임명되는 것일 테고, 별 잡음 없이 되풀이돼 온 관행이기도 하니까.
정작 따지고 싶은 것은 성명의 내용이다. "한미 FTA 체결로 새로운 첨단 금융기법이 원활히 도입되고, 금융 관련 법령이 더 신진화되며, 금융감독 및 규제 투명성도 제고될 수 있다." 금융협회가 성명에서 밝히고 있는 FTA 비준이 조속히 처리돼야 하는 이유다. 도대체 FTA가 체결되면 첨단 금융기법이 어떻게 도입된다는 건지, 왜 법규와 감독체제가 좋아진다는 건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성명 작성에 참여한 한 금융협회 관계자는 "딱히 직접적인 연관이 있지는 않다"고 말끝을 흐렸다.
아무리 정부에 등 떠밀려 내는 성명이라고 해도 협회장 공동 명의로 내는 것이라면 국민들이 납득할만한 충분한 논리는 있어야 하는 게 상식이다. 재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들이야 FTA 체결로 우리 기업들의 수출 증대를 기대할 수 있다는 명분이라도 있지만, 금융산업은 FTA로 외국자본의 잠식이 더 심화될 거란 우려가 더 큰 분야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요즘 정부 관계자들은 인터넷 등을 통해 떠도는 'FTA 괴담'에 분개하고 있다. 비록 물러서긴 했지만 검찰은 괴담 유포자들의 구속수사 방침까지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한미 FTA가 발효되면 첨단 금융기법이 원활히 도입될 거라는 금융협회의 궤변이 FTA가 체결되면 맹장수술비가 900만원이 될 거라는 등의 '괴담'과 뭐가 다를까 싶다. 게다가 이건 책임 있고 힘 있는 금융협회장들의 주장이지 않은가.
이영태 경제부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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