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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거 들어가는 고창 선운사 참당선원장 을광 스님/ "번뇌와 망상을 끊어내는 것 그것이 진정한 깨달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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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거 들어가는 고창 선운사 참당선원장 을광 스님/ "번뇌와 망상을 끊어내는 것 그것이 진정한 깨달음이죠"

입력
2011.11.10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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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전북 고창 선운사(禪雲寺)를 찾았다. 스님들이 산문(山門)을 걸어 잠그고 3개월 동안 집중 수행에 들어가는 동안거(冬安居) 결제일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동안거는 음력 10월 보름(11월 10일)부터 내년 음력 정월 보름(2월 6일)까지다. 올해는 전국 100여개 사찰과 선원에서 2,200여명의 수행납자(修行衲子)들이 화두를 붙잡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용맹정진한다.

선운사는 백제 위덕왕 24년(577)에 검단(黔丹) 선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고찰로,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동백나무 숲과 호남의 내금강으로 불릴 만큼 아름다운 단풍으로 유명한 곳이다. 절 입구부터 단풍 구경 온 산행객으로 붐볐다. 절 앞을 흐르는 계곡물은 단풍으로 붉게 물들어 있고, 경내에는 발갛게 익은 감들과 오미자가 가을 정취를 더하고 있었다.

선운사 옆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20여분 걸으니 인적이 드문 곳에 참당선원(懺堂禪院)이 나타났다. 법만(法滿) 주지 스님을 비롯해 11명의 선승들이 올 동안거를 날 곳이다. 늦가을 청명한 햇살을 한아름 품은 선원은 동안거 방부(안거에 참가하겠다는 신청 절차)를 들인 스님들을 맞으려고 재계라도 한 듯, 유난히 마당이 깨끗했다.

참당선원 요사에서 선원장인 을광(乙光ㆍ53) 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30여년간 선방과 암자에서 오로지 수행에만 몰두해 온 이판승(理判僧)답게 꼿꼿한 모습으로, 부처님의 가르침과 수행자의 본분에 대한 이야기를 자분자분 풀어나갔다.

기자들과 평생 첫 대면이라는 을광 스님은 "저는 산중에 박혀 사는 사람이라 결제니 뭐니 잘 모른다"고 말문을 열었다. 다만 "인간이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하고 훌륭하게 사는 것인가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웠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중"이라며 "세속에서 열심히 사는 분들이나 저나 특별히 다른 부분은 없다"고 겸양을 보였다.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狗子無佛性)'를 화두로 평생 수행에 전념하고 있는 스님은 "인간이 생로병사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 수행해야 한다"며 "인간은 번뇌와 망상 때문에 삿된 길을 가게 되는데 수행을 통해서만 그것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스님은 "깨달음이란 남들 없는 것을 나는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번뇌와 망상을 끊어내는 것"이라며 "깨달음을 얻으려면 열심히 꾸준히 정진하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과거에 비해 깨달음(선지식)을 얻은 선승이 적지 않느냐는 질문에 스님은 "선지식을 가진 이는 어디에 있는가? 세속에 이름난 사람이 선지식을 가진 이고 큰 스님인가?"라고 반문했다. 스님은 깨달음을 이렇게 정의했다."평생 산중에서 공부한 제 속을 누가 알겠습니까? 저도 오늘 태어나 처음으로 언론 플래시를 받았습니다. 제가 절에 와서 수행하는 곳에서만 살았는데 여기 있는 사람 중에 제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역사에 남은 유명한 스님들이 다 깨쳤습니까? 과거에 선지식이 많고 지금은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병원의 의사가 검증하겠습니까? 저처럼 정진하는 스님 중에도 알려지지 않은 훌륭한 분이 참 많습니다. 제가 공부를 얼마나 했는지는 제 양심만 아는 것입니다."그러면서 스님은 재가 불자들에게 "깨달음을 얻으려면 공인된 선지식 스님에게 가서 올바른 수행법을 배우는 게 가장 좋다"고 조언했다.

을광 스님과 짧은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입승(立僧ㆍ선방 관리 책임)스님부터 공양주(음식 담당), 선덕(공부 지도), 다각(차 담당), 명등(전기 관리) 스님까지 동안거 동안 각자의 소임과 자리를 정한 용상방(龍象榜)이 참당선원 선방 벽에 나붙었다.

이제 선승들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殺佛殺祖). 그러면 깨침을 얻을 것이다"라는 임제(臨濟) 선사의 말을 좇아 머리에서 발끝까지 전해지는 고통과 잠의 유혹을 이겨내며 미망(迷妄)과 치열한 사투를 벌이게 된다. 자신의 화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무너지는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계언(戒言)이다.

고창=글ㆍ사진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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