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동생에게 피해가 안 가게 해 주세요”.
지난 9월 말 서울 수서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던 A(30)씨는 수사관들에게 몇 차례나 같은 부탁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A씨는 동생(26)의 토익(TOEIC) 성적이 오르지 않자 1년 전 동생 운전면허증에 자신의 사진을 붙여 시험을 대신 본 게 적발돼 조사를 받는 중이었다. 공문서 위조 혐의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동생이 토익 성적 때문에 괴로워해 나쁜 일인 줄 알면서도 대리시험에 나섰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동생이 제약회사 영업직에 입사해 회사를 잘 다니고 있는데 이번 일 때문에 혹시나 불이익이 갈지 몰라 걱정이다. 동생은 잘못이 없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A씨는 왜 대리 시험을 치른 것일까.
정부 중앙 부처 계약직 연구원인 A씨는 대구에서 공무원 시험 공부를 함께 한 동생의 토익 성적이 잘 나오지 않자 함께 걱정하기 시작했다. 동생은 지난해 10월 전까지 토익을 2번 치렀지만 점수는 990점 만점에 500점대에 불과했다. 취업을 원하는 회사에 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점수였다. 서류 전형에서 계속 낙방했다.
보다 못한 형은 “내가 대신 시험을 봐주겠다”고 나섰다. 대리 시험을 치르던 지난해 10월 당시 A씨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임용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A씨는 대구운전면허시험장에 동생의 운전면허증 분실신고를 한 뒤 새로 발급받은 동생의 운전면허증에 자신의 얼굴 사진을 붙였다. 동생 대신 본 토익 성적은 730점.
동생은 형이 대신 치른 성적표를 받았다. 한편으로 걱정도 됐지만 취업이 급해 동생은 이 성적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형의 도움 덕에 지난 4월 제약회사에 입사한 동생은 업무 적응을 잘 하고 회사 내에서 “영업을 잘 한다”는 평판도 듣고 있다.
하지만 감쪽같았던 이들의 비밀 범죄는 지난달 형이 위조된 동생의 운전면허증을 정상 면허증으로 되돌리기 위해 강남운전면허시험장에서 면허증을 재발급 받으려다 들통났다. 형이 새로 제출한 동생 사진이 위조 면허증에 있던 형의 사진과 다소 다르다는 점을 눈여겨본 면허시험장 직원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것. 경찰 관계자는 “우리가 사진을 봐도 형제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말 닮았다. 눈썰미가 좋은 면허시험장 직원이 아니었으면 완전범죄가 될 뻔 했다”고 전했다.
또 한 가지의 해프닝은 동생이 합격해 잘 다니고 있는 제약회사 영업직은 토익 성적이 입사를 결정하는 요소도 아니었다는 점. 형의 고생이 헛수고였던 셈이다.
경찰 관계자는 “형 A씨는 자신은 취직이 되고 동생은 계속 공무원 시험과 민간회사 취업에 실패하자 안타까운 마음에 불법을 저질렀다고 했지만 잘못은 잘못”이라고 밝혔다. 수서서는 지난달 초 A씨를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동생은 혐의가 없어 조사도 받지 않았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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