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질기고 질긴 악연(惡緣)이긴 한 것 같다."
SK그룹, 그것도 오너 일가(家)를 타깃으로 검찰이 내사에 착수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올해 3~4월, 사정기관 주변에서 떠돌던 '관전평'이다. 그리고 8, 9일 SK그룹 본사 및 계열사들을 검찰이 전격 압수수색함으로써 이 말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SK그룹과 검찰 간 '인연'의 시작은 1994년 8월. 최태원 회장(당시 SK상사 이사대우)은 20만달러를 미국 캘리포니아주 11개 은행에 불법 예치한 혐의(외화밀반출)로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당시 검찰은 최 회장과 부인인 노소영(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씨가 "결혼 축의금으로 받은 돈을 은행에 넣은 것"이라는 해명을 받아들여 무혐의 처리했다.
불과 1년 뒤, 최 회장은 다시 검찰 청사로 불려왔다. 대검 중수부의 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 때문이었다. 결국 문제의 20만달러의 출처는 바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었던 것으로 밝혀졌으나, 당시 수사의 초점은 최 회장이 아니라 두 전직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최 회장 부부가 형사처벌되진 않았다. 이 때 최 회장의 부친인 고 최종현 명예회장도 뇌물공여 혐의로 조사를 받았지만 공소시효가 완성돼 기소되진 않았다.
하지만 2003년 2월, 서울중앙지검 형사9부의 SK그룹 분식회계 사건 수사로 최 회장은 끝내 철창 신세를 졌다. SK글로벌이 은행 채무를 숨기고 손실을 낮추는 수법으로 1조5,587억원의 분식회계를 저지른 사실이 적발돼 구속기소된 최 회장은 1심에서도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아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기까지 약 1년간 경영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으로 최 회장은 2008년 5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이 확정됐다.
그러나 이번 수사의 진행상황에 따라 최 회장이 두 번째 옥고를 치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사실 이명박 정부의 친기업 이미지 표방, 지난해 한화그룹ㆍ태광그룹 수사 당시 제기된 기업수사를 향한 비판 여론 등 각종 정황상 이번 SK그룹 수사가 강도높게 진행될 가능성은 적어 보였다. 최 회장의 고려대 2년 선배이자 테니스를 함께 칠 정도로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한상대 검찰총장이 지난 8월 취임하자 이런 관측에는 더욱 무게가 실렸다. 하지만 이런 추측이 무색하게도 검찰의 이번 수사는 최 회장은 물론 동생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을 정조준하고 있는 양상이다. 악연의 결말이 어떤 모습일지 법조계와 재계의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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