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오너 일가의 횡령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이들이 무리하게 회사 돈을 빼돌린 이유를 다각도로 들여다보고 있다. 재계서열 3위의 대기업 오너가 불법인 줄 알면서도 회사 돈에 손을 댔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검찰은 추론하고 있다. 특히 SK그룹 오너가 2003년 분식회계 사건으로 홍역을 치렀던 점까지 감안하면 당시에 '검찰 트라우마'를 잠재울 만한 다급한 사정이 뭐냐에 관심이 쏠린다.
일각에서는 최 회장이 막대한 자금으로 선물투자에 나선 이유로 최 회장의 사촌인 최창원 부회장 등과의 계열분리에 대비한 실탄 마련 차원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선친인 최종현 선대회장의 사망에 따른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 차입한 돈을 갚고, 경영권 방어를 위해 빌린 개인부채를 정리하려고 선물투자에 나섰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관측은 최 회장이 선물투자에 뛰어든 이유를 설명해 줄 수는 있지만, 회사 돈을 끌어들인 의혹까지 명쾌히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검찰 안팎에서는 최 회장과 최재원 수석부회장의 횡령 의혹을 풀어 줄 열쇠로 3년 전 세계 금융위기를 초래한 리먼브러더스 사태를 지목한다.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인 리먼은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의 후폭풍으로 2008년 9월 파산하면서 전세계 금융시장은 대혼란에 빠졌다. 당연히 주식과 선물옵션에 '올인'한 국내 투자자들도 엄청난 손실을 봤다.
당시 수천억 원을 선물투자에 쏟아 부었던 것으로 알려진 최 회장 형제도 예상치 못한 리먼 사태로 거액을 날린 것으로 전해졌다. 더욱이 최 회장의 선물투자 손실이 알려질 당시 국내가 아닌 해외 파생상품이라는 설이 파다했던 점에 비춰 예상보다 피해액이 훨씬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최 회장은 이러한 손실금을 메우기 위한 급전이 필요했지만 개인자금 대부분이 선물투자에 사용돼 자금조달이 여의치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창업투자사 베넥스인베스트먼트에 출자된 SK계열사 자금 500여억원이 김준홍(46) 대표의 차명계좌를 거쳐 무속인 김원홍(50)씨 계좌로 흘러 들어간 시점도 공교롭게 리먼 사태 한 달 후인 2008년 10월이다. 최 회장 형제가 리먼 사태로 선물투자에 실패하자 손실을 메우기 위해 SK계열사가 출연한 베넥스 출자금을 급히 빼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리먼 사태가 불법적인 자금동원의 원인이 됐을 것이란 정황은 또 있다. 최 회장 형제가 저축은행을 통해 융통한 것으로 알려진 수천억원의 대출시기가 모두 리먼 사태 이후인 2008~2010년에 집중됐다. 대기업 총수가 제2금융권인 저축은행을 통해서까지 돈을 빌린 것은 손실금을 메우기 위한 긴급 조치로 보인다는 게 투자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또 재계에선 최 회장 형제가 선물투자로 손실을 본 직후 사교 모임을 통해 알고 지내던 재벌가 3세와 젊은 벤처기업 최고경영자(CEO) 등으로부터 적게는 수억에서 많게는 수십억원씩 돈을 빌렸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검찰은 조만간 최 회장 형제를 소환해 선물투자 경위와 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이유 등도 조사할 방침이다.
▦리먼브러더스 사태
2008년 9월15일 미국의 세계적인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전세계로 확대된 글로벌 금융위기를 말한다. 리먼은 파산 당시 부채가 6,000억달러(약 670조원)에 달했으며 증시폭락으로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봤다.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등 악성 부실자산을 과도하게 보유한 상태에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서 발생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