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70만 명의 입시생들이 일생 일대의 '결전'을 벌이는 날 조만성(18)군은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으로 나선다. 10일, 혹 시험 보는 데 방해라도 될까 온 나라가 숨 소리조차 크게 못 내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일에 그는 오히려 "대학 입시를 거부한다"고 외치기로 했다.
서울의 한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던 조군은 2학년이던 지난 1월 학교를 그만뒀다. 그가 보기에 학교는 대학 입시만을 위해 달리는 열차였다. 공부를 잘 하는 친구가 지각을 하면 선생님은 "늦을 수도 있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똑같이 지각해도 공부 못하는 친구들은 "너 때문에 학교 명예가 떨어진다. 차라리 자퇴해라"라는 폭언을 들어야 했다. 조군은 "성적으로 인간의 가치가 가려지는 곳에서 친구들과의 대화 주제는 시험 성적 대학, 단 세가지 뿐이었다"고 토로했다.
서로를 겨누는 섬뜩한 경쟁과 차별에 지쳐 조군은 스스로 11년간의 학교 생활을 끝냈다. 중졸이 됐다. 불안했다. 매년 수능일이면 "나는 수능을 거부한다"며 혼자 피켓을 드는 사람을 보며 친구들과 "한 명이 아니라 많은 학생들이 입시를 거부하면 사회적으로 알려지지 않을까"라고 말했던 기억이 났다. 조군까지 18세 동갑내기 친구 5명이 모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터넷 등을 통해 '대학입시 거부'를 제안했다. 당초 목표였던 10대뿐 아니라 "대학 자체를 거부하겠다"는 20대도 동참했다.
이렇게 해서 지난 9월 '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이 만들어졌다. 경쟁만 강요하는 교육과 사회 분위기를 바꾸자는 고등학생부터 대학 등록금이 없어 '대학으로부터 거부당한' 20대, 최근 서울대를 자퇴한 유윤종(23)씨 등 이 모임 구성원들이 처한 상황은 제각각이다. 그러나 학력ㆍ학벌주의를 바꿔보자는 데는 모두 뜻이 같다. 조군은 "중졸인 나는 앞으로 많은 차별과 무시를 당하게 될 것이지만 이런 현실이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이 운동에 나섰다"고 말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입시거부 운동은 젊은 세대의 불만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출된 것으로 기성세대가 교육 현실 개선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며 "하지만 제도나 인식이 개선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입시 자체를 거부하는 학생들은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에 부딪히게 될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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