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 문제를 둘러싸고 여야에서 각기 두 갈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에서는 '2차 D-데이'로 잡은 10일 강행 처리해야 한다는 강경론과 좀 더 타협 노력을 해야 한다는 온건론이 맞서 있다. 민주당에서도 한나라당과 절충점을 찾자는 '온건파'가 지도부의 강경론에 반기를 들고 있다. 이에 따라 비준안 처리가 11월 말이나 12월로 넘어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9일 최고위원∙중진연석회의에서 "더 이상 처리를 지연시키면 참으로 어려운 국면을 맞게 된다"며 "국민 요구에 의한, 국익에 의한 정당행위라는 것을 인식하고 야당의 폭력적 점거에 맞서 당당히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황우여 원내대표는 "민주주의의 꽃인 의회주의는 토론과 타협이라는 인고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며 "민주당의 의회주의 의원들이 새로운 물꼬를 트고자 하는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고 다른 목소리를 냈다.
외통위원 간에도 "빨리 처리하자"는 강경론과 "아직 아니다"는 온건론이 팽팽하게 맞서 있다. 온건파인 남경필 위원장과 구상찬 의원은 "야당과 협상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박종근 김형오 의원 등 중진들과 유기준 윤상현 의원 등 강경파는 "이렇게 시간을 끌면 18대 국회 내 처리가 힘들어진다"며 즉각 처리를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에선 투자자ㆍ국가소송제도(ISD)에 대한 추후 협상을 전제로 한나라당과 절충점을 찾자는 온건파의 서명운동이 파열음의 진원지다. 이들은 '한미 FTA 발효 즉시 ISD 유지 여부에 대한 협상을 시작하기로 한국과 미국 정부가 합의한다면 비준동의안을 처리할 수 있다'는 내용을 놓고 서명을 받았다. 서명자 수에 대해 당 지도부는 "공식 서명한 의원은 17명"이라고 말했으나 서명을 주도한 의원은 "구두로 동의한 의원까지 합치면 45명 가량 된다"고 말했다.
손학규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익 균형이 깨진 FTA는 안 된다"며 "우리 정부는 그 동안 얼마나 논의했다고 반대 의견을 묵살하고 밀어붙이려 하느냐"고 강경한 입장을 반복했다. 김진표 원내대표도 "정부는 지금이라도 ISD 재협상 약속을 받아와야 한다"며 "ISD 폐기에 대한 논의 없이는 비준을 허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홍영표 원내대변인이 "ISD에 대한 재협상 약속 없이는 비준안을 처리할 수 없다는 입장이 여전한 당론"이라고 보고한 뒤 지도부는 기존 당론을 추인했다.
하지만 강봉균 김성곤 의원 등은 여전히 협상을 통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강 의원은 "지도부의 입장과 달리 FTA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다수 의원들의 생각이 서명운동을 통해 확인됐다"고 말했다. 두 의원은 8일 손 대표를 만나 이 같은 뜻을 전달했다.
한편 여야 원내대표는 이날 비공개 회동을 갖고 'ISD 절충안' 등을 놓고 막판 절충을 벌였으나 접점을 찾는 데는 실패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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