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발적 인물들로 속물적 세태 풍자 "쉬운 문장으로 큰 세계 그리고 싶어"
소설만 보면 나이답지 않은 성숙함으로 산전수전 다 겪은 듯 하지만, 외양은 앳된 고교생 같다. 헤드폰을 끼고 청바지에 스웨터를 입고 나타난 소설가 최진영(30)씨는 웃음조차도 동화적이다. 이 묘한 불일치는 인터뷰에서도 시종했다. 구성진 이야기 솜씨와 빼어난 말재주로 풍부한 서사성을 보여주는 작품과 달리, 그는 "윤동주의 시와 생떽쥐페리의 소설을 가장 좋아한다"며 "내공이 쌓이면 그런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는 세계로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의 시선은 너절한 세태에 밀착해 있지만, 그 마음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유추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해 7월 장편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을> 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주목 받기 시작한 그는 그 이후 국내 문예지에 5편의 단편을 발표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탄탄한 상황 묘사력과 인물 형상화, 술술 읽히게 하는 문장력 등으로 요즘 젊은 작가에게선 보기 힘든 소설의 정통적 미덕을 갖췄다는 평을 듣는다. 문학평론가 이명원씨는 "소설의 형식 면에서 그 연배에 걸맞지 않은 완성도와 성숙함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다루는 대상은 폭발 직전의 내적 도발성을 가진 인물이다"며 "소설의 안정적 톤과 등장인물 성격간의 미묘한 불일치가 매력적이다"라고 말했다. 당신>
올해 문예중앙 가을호에 발표한 단편 '돈가방'은 현실 세태를 그리는 그의 경쾌한 이야기 솜씨가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형제지간인 장수 부부와 두수 부부가 벌초를 위해 부모 묘에 갔다가 인근에서 3억원의 돈가방을 주우면서 벌어지는 한바탕 소동을 담았다. 거래처 사장들에게 기죽지 않기 위해 리스로 아우디 차량을 모는 장남 장수 부부는 전형적 속물형. 두수는 생활력은 별 볼 일 없지만 의리파이며 그의 처는 학자금 및 전세금 대출 갚기에 허리가 휘는 억척 생활형 주부다. 3억원의 돈가방 앞에서 이 넷의 반응은 제 각각인데, 의리파 두수는 제 코가 석자인 주제에도 '신고해야 한다' '가장 어려운 형편인 막내와도 나눠야 한다'는 바른 소리만 하니, 그의 처는 환장할 노릇. 반면 장수는 돈 가질 궁리에 바쁘다가 자기 사업이 어려워져 급전이 필요하다는 핑계로 두수 몫까지 챙기려 들고 그의 처는 남편 연기에 장단을 맞추며 찰떡궁합을 과시한다. 이 구도에서 부글거리는 마그마 같은 인물은 두수의 처다. '등신 같은' 남편에 부아가 치밀다 직접 행동에 나서 형님네가 움켜쥔 돈가방을 뺏으러 몸싸움을 벌이며 폭발한다. 인간 사회의 속물적 세태를 경쾌한 문장으로 풍자한 작품은 통쾌한 웃음과 함께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젊은 작가라면 관념적인 치기를 부릴 법도 하지만, 최씨는 "일상 생활에서 볼 수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면서 "화려한 수사나 어려운 말보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단어와 문장이 좋다"고 말했다. 쉽고 간결한 언어로 깊이있는 큰 세계를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지향점이 윤동주와 생텍쥐페리적 세계. 세상사의 밑바닥 풍경까지 실감나게 묘파하는 그의 소설이 조숙한 듯 보이면서도 서정적 감수성이 풋풋하게 묻어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덕성여대 국문과를 나와 2006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한 그는 한동안 고향인 경북 풍기군에서 지내다 2008년 다시 상경해 본격적인 창작에 몰두했다. 잇달은 단편 발표에 이어 장편 한편도 집필을 마쳐 조만간 출간한다니, 그의 생산성이 어디까지 폭발할 지 궁금하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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