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이란 말을 자주 듣는다. '괴담'이라면 귀신 이야기나 해괴망측한 이야기를 떠올리기 쉽지만 요즘 괴담은 다르다. 진위를 가릴 수 없거나 그럴 필요가 없는 과거의 괴담과 달리 'FTA 괴담'이나 '방사능 괴담'은 금세 진위를 가릴 수 있어 '괴담'이란 말이 어색하다.
근거 없는 뜬소문을 뜻하는 '유언비어(流言蜚語)' 라는 말을 제쳐 두고 '괴담'이란 말을 끄집어낸 이유는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구닥다리 냄새가 짙은 데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의 악몽을 일깨우기 십상이다. 유신시절 긴급조치 1호가 징역 15년 이하라는 처벌조항과 함께 규정한 '유언비어 날조ㆍ유포죄'의 서슬은 지금 떠올려도 오싹할 지경이다.
데마고기에 가까워진 '괴담'
그렇다고 현재의 '괴담'을 딱히 유언비어라고 할 수도 없다. 유언비어는 어디까지나 출처와 전달경로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민중 사이에 번져 떠도는 소문이다. 그러나 지금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괴담'은 처음 생성과정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더라도, 최소한 2차 전달ㆍ확산 경로는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고, 관련자도 특정할 수 있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의식적ㆍ의도적으로 퍼 날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유언비어가 과소정보가 빚은 정보와 현실의 괴리에 불안을 느낀 사람들의, 현실 해석을 위한 자발적 정보 생산의 결과인 것과는 달리 '괴담'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나왔다. 더욱이 공당까지 전달ㆍ확산 경로에 틈입한 마당이고 보면, 이미 유언비어 수준을 넘어섰다.
유언비어와 비슷한 뜻으로도 쓰이지만 정보 생성의 목적이나 유포 의도가 명백하고, 특히 정치적 의도가 뚜렷한 '데마고기(Demagogy)'야말로 '괴담'의 실체에 가깝다. '대중을 선동하기 위한 정치적 허위 선전이나 인신 공격'(표준국어대사전)을 뜻하는 데마고기의 역사는 실로 오래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기원전 5세기 그리스 희극시인 아리스토파네스가 당시 아테네의 정치가 클레온의 선동정치를 비판하면서 처음 쓴 말이다. 역사상 수많은 데마고기 유포자(데마고그) 가운데 가장 극적으로 목적을 이루고, 그럼으로써 그 폐해를 널리 알린 인물은 아돌프 히틀러였다. 데마고기가 개인과 사회에 얼마나 큰 위험을 안기는가는 인류 사상 최악의 집단광신을 불렀던 히틀러 시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겸 사회비평가 헨리 L. 멘켄(1880~1956년)은 데마고그를 "스스로 거짓임을 알고 있는 교의(敎義)를, 바보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설교하는 사람"이라고 명쾌히 정의했다. 이런 정의에 따르면 진위를 판단하지 못한 채 '괴담'을 퍼 나른 많은 사람들은 설사 나름대로의 소박한 의도가 있었더라도, 데마고그가 아니라 데마고기라는 주술(呪術)에 걸려든 1차 피해자인 셈이다.
그런데 서울 노원구 월계동의 '방사능 아스팔트'와 관련, 시간당 피폭선량이 체르노빌 원전 폭발사고 당시 강제이주 조치가 취해진 구역보다 높다고 주장한 환경운동연합에 그 정도의 진위 파악 능력이 없었을까. 떠도는 'FTA 괴담'을 그대로 퍼 담은 공당도 마찬가지다.
부단한 회의로 주술 벗어나야
나라를 휘젓는 '괴담'이 데마고기에 가깝더라도 이를 인위적으로 막을 길은 없다.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거론할 것도 없이, 플라톤 같은 고대 그리스 현자들이 간파했듯, 대중 선동과 정보 조작은 '대중의 지배'인 민주주의에 따르게 마련이다. 선거법의 금지조항은 선거에 미칠 직접적이고 중대한 악영향만은 피하자는 뜻이다. 평소의 데마고기는 결국 다른 주의ㆍ주장과의 경쟁으로 운명이 결정된다.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였던 고든 W. 올포트(1897~1967년)가 유언비어의 침투력은 '내용의 중요성'과 '사안의 애매성'의 곱에 비례한다고 보았듯, 중요한 사안일수록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 데마고기를 막을 수 있다. 그것이 정부의 몫이라면, 데마고기의 주술에 빠지지 않으려는 부단한 회의는 이 시대를 사는 개개인의 몫이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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