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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불타는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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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불타는 이탈리아

입력
2011.11.0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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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의 사임을 전한 어제 아침 독일 신문은"실비오 랜드가 불탔다"고 논평했다. 로마 황제 네로의 통치 말년, 로마가 네로의 방화로 알려진 큰 불로 잿더미가 된 역사에 빗댄 듯하다. 베를루스코니는 황제 못지않은 부(富)와 권력을 누렸다. 또 오만무도한 에고이즘과 온갖 천박한 언행으로 안팎의 비난과 질시를 받았다. 그러면서도 음습한 정치 책략과 우파 포퓰리즘으로 17년이나 권좌를 지켰다. 그리고 마침내 국가 재정위기 속에 측근과 동지의 모반으로 쫓겨나는 운명을 맞았다. '광기 어린 폭군'네로를 떠올리게 하는 비유가 언뜻 절묘하다.

■ 현대 역사가들의 연구에 따르면, 서기 64년의 로마 대화재가 네로의 방화라는 오랜 추론은 근거 없다. 오히려 근위대를 동원해 화재 진압과 구호에 힘쓴 기록 등으로 미뤄, 불은 올리브유와 옷감가게가 밀집한 시장에서 걷잡을 수 없이 번진 것으로 추정한다. 방화 누명은 초기의 선정(善政)에도 불구하고 왕권 다툼에 얽힌 모후와 현인 세네카를 죽이는 등 악행을 저지른 탓으로 짐작한다. 특히 기독교도들이 방화설을 퍼뜨렸다며 학살한 때문에'권력과 광기'의 상징으로 왜곡되게 희화(戱畵)화 됐다는 지적이다.

■ 그런대로 비교하면, 둘은 닮은 면모가 많다. 네로는 후계 경쟁의 불리한 처지를 딛고 황제에 올라 시와 예술과 건축을 장려, 로마의 아름다운 건축유산을 남겼다. 베를루스코니는 학생 때 유람선에서 베이스를 연주하고 노래하며 고학했다. 뒷날 프로축구팀 AC 밀란 등 소유기업의 노래를 작곡하고, 스스로 음반도 냈다. 소규모 건설업으로 시작, 미디어 재벌로 입신하기까지 마피아 및 정치세력들과 유착한 것으로 줄곧 의심받는 것도 음흉한 폭군을 연상하게 한다. 방탕한 언행과 숱한 스캔들도 네로의 황음(荒淫)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 그러나 냉철한 안목에는 그도 방화범은 아니다. 이탈리아 경제는 이미 1980년~90년대 침체에 빠져 성장률은 EU 평균의 절반에 그친다. 경제규모와 소득, 삶의 질은 세계 10위 권이지만 1조9,000억 유로 국가 부채는 그리스 다음으로 높은 비율이다. 그 바탕은 정치와 사회 전반에 뿌리 깊은 부패와 비효율이다. 특히 조직범죄 지하경제 탈세 등 반사회적 요소는 이탈리아를 '유럽의 병자'로 만들었고, 회생이 어렵다는 진단이다. 이런 현실에 비춰, 베를루스코니를 되풀이 지도자로 선택한 국민이 다 함께 이탈리아를 불태웠다면 지나친 평가일까.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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